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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만주 독립운동사적지 탐방 3 (신흥무관학교, 백서농장, 삼원포, 유하현)

 

 

합리(합니하)는 신흥무관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던 곳이다. 1912년 당시에는 합니하로 불렀지만 지금은 고려관자란 지명으로 바뀐 곳이다. 서간도로 집단 망명을 이끈 인물은 임청각 석주 이상룡, 도곡마을 고성이씨 일가, 백하 김대락, 일송 김동삼을 중심으로한 천천리 의성김씨 일가, 퇴계 이황의 후손인 도산 하계마을 진성이씨 일가, 무실, 박실, 삼산마을의 전주류씨 동산 류인식 일가, 황호를 원로로 하는 평해 사동마을 평해황씨 일가, 남후면 추산 권기일 일가 등, 석주와 겹사돈을 맺은 선산의 왕산 허위 선생 일가도 1912년과 15년ㅇ 집단망명해 이들과 합류한다.

 

 

1910년 음력 12월 24일 의성김씨 일가를 필도로 이들 거족은 줄줄이 독립전쟁을 하기 위해 조국을 떠났다. 압록강을 거슬러 올라가 지린성 화전 횡로촌을 거쳐 통화현 삼우너포에 도착, 1911년 4월 만주지역 최초의 독립운동단체인 경학사와 6월 10일 신흥강습소를 설립했다. 1912년 7월 20일 신흥강습소는 삼원포 합니하로 옮겼다. 여준과 이상룡이 신흥중학, 신흥학교로 교명을 바꿔 운영했다. 신흥학교는 수많은 독립군 요인과 지도자를 배출했다. 지청천, 신팔균, 김광서는 일본육사를 졸업했지만 탈출해 이 학교 교관으로 활약했다. 신흥학교는 광복군의 전신아라 할 수 있다. 3천 500명이 배출되었다.

 

 

백서농장은 독립군 부대 최초 군영으로 지린성 통화시 류허현 빠리시오 샤오베이차에 위치하고 있었으며 1914년 서간도의 부민단과 신흥학우단이 독립전쟁을 준비하기 위해 만들었다. "백서"는 백두산 서편에 있어서 지어졌으며 농장이라는 것은 중국인들이 독립운동단체를 조직하는 것을 금지하여 붙인 것이다. 봉천성 통화현 제8구 관할 팔리초구 소북대에 있었다. 백서농장이 위치한 곳은 백두산 서쪽편 산록 사방 200여 리에 달하는 무인지경의 고원평야로서 깊은 산 속에 위치해 있었다. 1914년 가을부터 인력과 물자와 금력을 동원하여 수천 명의 병력을 수용할 수 있는 병영을 완성하였다.

 

 

백서농장의 임원으로는 장주 김동삼, 훈독 양규열, 총무 김정제, 의감 김환, 경리 김자순, 수품 곽문, 의무 정선백, 농감 백광운, 교관 허식, 김영윤, 김동식, 가보형, 교도대장 이근호, 제1중대장 안상목, 제2중대장 박상훈, 제3중대장 김경달 등이였다. 군사훈련과 교육은 훈독인 양규열의 감독 밑에 시생되었으며, 일반 작업과 농사는 장주인 김동삼의 지도 밑에 농감인 백광운이 지휘를 하였다. 독립운동기지 건설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기후와 풍토가 맞지 않고 음식물까지 부족하고 다양한 질병이 발생하고 떠나는 사람들이 많아지자 3.1운동후 부민단이 해체, 한족회가 조직되면서 해제되었다.

 

 

유하현(유허현)은 지린성 퉁화시(통화시)의 현으로 성 동남부, 시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현 정부는 류허진(류하진)에 소재하며 행정구획은 싼위안푸조선족진(삼원포조선족진)을 포함한 12개 진, 2개 향, 장자뎬조선족향(강자점조선족향)의 1개 민족향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내는 동서 간 107㎞, 남북 간 76.5㎞로 면적은 3,348㎢이다. 19개 소수민족이 4만으로 10.8%를 점유하고 있다. 구한말 싼위안푸 조선족 진에 신흥무관학교가 세워졌다.

 

 

삼원포(싼위안푸)에는 3.1운동 이후 일제강점기에 신민회가 중심이 되어 간도에 삼원보라는 독립운동기지를 세웠다. 1910년 일본에게 국권을 빼앗기자, 신민회를 비롯한 독립운동단체들은 나라 밖에 독립운동기지를 건설하여, 청년들을 이주시켜 무관을 양성하고 독립전쟁에 대비하려 하였다. 삼원보는 이러한 배경하에 1911년 지린성 류허현에 설립한 독립운동기지의 거점이었다. 현재의 중국 퉁화시 류화현에 있는 삼원포 조선족 진에 해당하는 곳이다.

 

 

이회영과 무관학교 설립을 주창하였고 이상설과 학교 설립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김형선, 이장녕, 이관직 등이 군사교육에 참가하였다. 이관직은 대한제국 무관학교 출신으로 육군 부위로 복무하였고 신흥무관학교의 교관으로 활약하였다. 이곳에서는 독립운동단체인 경학사가 동포들을 조직화하고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강습소를 세워 청년들에게 근대적 교육과 군사훈련을 가르쳤다. 신흥강습소는 뒤에 신흥무관학교가 된다. 그러나 흉작과 질병으로 어려움에 처하자, 1911년 경학사가 해제되고 다음해에 기지를 삼운보의 남동쪽에 있는 통화현 합니하로 옮겼다.

 

장춘(창춘)은 중국 지린성의 성도이며 중국 자동차 생산지로 유명한 곳이다. 지린성을 기고 있으며, 이퉁강 연안에 있다. 청나라 후기에 산둥성 사람들이 개척하기 시작하였고 러시아가 둥칭철도를 부설한 이후부터 둥베이 대평원 중앙부의 교통 요지가 되었다. 러일전쟁의 결과로 둥칭철도의 창춘 이남 부분이 일본에 넘어갔고, 1935년에는 창춘 이북 부분도 만주국에 매각되었으나 2개 철도의 합류지점으로 교통의 요지 구실을 계속 유지해왔다. 일본에 의해 만주국이 성립되자 수도가 되어 신징(신경)이라 개칭하였고, 1954년 성도를 지린에서 창춘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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