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해외여행

만주 독립운동사적지 다롄 탐방 1

 

 

대련(다롄)은 중국 랴오닝성 라오둥반도 남단부에 있는 도시로 아름다운 해변의 도시로 알려져 있다. 35개의 소수민족이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민족문화가 공존한다. 청나라 때는 칭니와라고 불렀으며 청일전쟁 후 러시아가 다롄의 해안가를 조차하여 작은 어촌이었던 곳에 항만을 건설하였다. 러일전쟁 후 일본이 50여 년 동안 조차하여 자유항으로 하고 남만주철도 본사를 이곳에 두어 만주 경략의 거점으로 삼았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중국에 반환되었다. 1950년 서쪽의 뤼순과 합병하여 뤼다라고 불렀다가 1981년에 다롄으로 고쳤다.

 

 

여순(뤼순)은 중국 라오닝성 라오둥반도 남단부에 있는 군항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후 뤼다시에 편입, 현재는 다롄에 속해 있다. 만주의 요동반도 끄트멀이레 자리잡고 있으며, 주변에 고지가 보호하는 후미진 만이 있어 천연의 항구 입지를 갖추었으며, 황해와 발해만을 감시, 통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어 일찌기 전략적 ㅇ충지로서의 가치를 주목받았다. 청나라 말에 북양함대의 근거지였으나 청일전쟁 후 러시아가 조차하여 대군항을 건설함으로써 러일전쟁 당시 중요한 전략적 쟁탈지가 되었는데 전후 일본의 해군기지가 되었다가 제2차 세계대전 후 1955년에 중국에 반환되었다.

 

 

19세기 말 청나라 북양함대의 기지가 설치되었다가 1895년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에게 점령된다. 이 때 현장을 점령한 일본군은 훗날 남경 대학살 사건을 연상케 하는 대학살이 진행되었다. 청일 전쟁 종전 후 여순, 대련을 포함한 요동반도 남단을 일본이 조차하려 했으나 러시아, 프랑스, 독일 의 압력으로 포기하고 만다. 이것이 삼국간섭이다. 러시아가 일본에 압력을 가한 건 남하정책에 몰두하던 러시아 또한 부동항인 이 곳을 탐냈기 때문이다. 1898년 러시아와 청나라의 비밀 협정에 의해 여순은 대련과 함께 러시아의 조차지가 되어 러시아 태평양 함대의 실질적인 모항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러일전쟁은 1904~1905년에 만주와 한국의 지배권을 두고 러시아와 일본이 벌인 전쟁으로 1904년 2월 8일에 일본함대가 귀순궁항을 기습공격함으로써 시작되어 1905년 9월 5일에 강화를 하게 된 러시아와 일본 간의 전쟁이다. 한국과 중국 동북지방인 만주의 분할을 둘러싸고 싸운 것이지만 그 배후에는 영일동맹과 러시아 프랑스 동맹이 있었고, 제1차 세계대전의 전초전이었다. 러시아는 패배의 결과로 혁명운동이 진행되었도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한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고 만주로 진출할 수 있게 되었으나 미국과 대립이 시작되었다.

 

 

 

일본관동법원 구지는 러일전쟁에 승리한 일본은 1906년 랴오닝성 남부에 관동주를 만들고 통치기구로 여순에 관동도독부를 설치하면서 도독부 산하에 고등법원과 지방법원을 두었는데 원래 전체 면적 5300㎡ 규모였던 법원은 현재 1300㎡만 남은 상태이다. 1945년 해방 후 잠시 대련시에서 이용하다가 1953년부터 병원으로 운영되었다. 1999년 뤼순커우 인민병원이 건물을 헐고 신축건물을 지을 계획을 세우자 한국의 여순순국선열재단은 대련시 정부에 건물의 중요성을 강조해 문화재 지정을 받았으며 건물을 매입, 원형복원 후 전시관으로 만들었다. 각종 고문기구, 안중근 의사 유묵 등이 있다.

 

 

여순(뤼순)감옥은 1902년 러시아가 요동반도를 차지하면서 러시아가 저항하는 중국인들을 수감하기 위해 지은 건물이며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뤼순을 점령하면서 1907년 증축하여 지금의 규모가 되었다. 1906~1936년 사이 수감자은 연간 약 2만 여 명에 이를 정도였으며,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고 난 뒤 한국과 중국의 수많은 항일지사들이 무참하게 체포당하여 수감되었으며 갖은 고문으로 죽어나갔으며, 1942년에서 1945년 짧은 기간에도 공식적으로 약 700여 명 이상의 수감자가 사형을 당하였다고 하며, 그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사망하였다는 의혹을 가지고 있다.

 

 

1945년 8월에 소련의 붉은 군대가 뤼순에 주둔하면서 뤼순감옥의 사용이 중지되었지만, 1971년 재정비를 통해 관광객들에게 전시관으로 공개하였고 1988년 중국정부에 의해 국가중점역사문화재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뤼순감옥의 곳곳을 둘러보면 우리나라 조국의 독립을 위해 투쟁했던 독립지사들의 정신을 엿볼 수 있는 곳임을 알 수 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한 마음으로 일제에 맞서 싸우던 역사의 한 부분을 알 수 있는 곳이다.

 

단둥은 중국 랴오둥 반도의 동남부에 있으며 랴오닝성에 있는 도시로 옛 이름은 안둥이었으나 1965년 개명하였으며, 압록강 하구부의 신의주 대안에 자리하여 신의주와는 철교로 연결된다. 원래 작은 마을이었으나 1907년 개항장이 되었고 3년 후 일본의 대륙진출 문호로서 발전하였다. 고대에는 단둥이 고구려의 영토였으나 당나라의 고구려 정복후에는 안동도호부에 속했다가 발해가 건국된 이후 발해의 지배를 받았다. 1931년에 만주 사변이 발발하자 일본군에 점령되었고 만주국은 1934년 안둥성을 신설, 안둥 현을 성도로 정했다. 한국 전쟁 때는 중국인민지원군의 병참 전선이 되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주최측 및 언론기사 등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