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가을 여행으로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찾아가는 방이역의 3번출구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백제고분은 토광묘, 옹관묘의 8기 고분 무덤과 무덤사이로 이어지는 길에서 산책하기 좋은 곳이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 산47-4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백제 초기의 무덤들로 1979년 12월 28일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1971년 국립중앙박물관과 문화유산연구소의 합동지표조사 결과 8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1975년 잠실지구 신시가지 조성계획에 따라 6기의 고분이 발굴 조사되었다. 고분공원으로 조성되었다.
대부분 도굴되어 남아 있는 유물이 매우 적지만 고분의 구조와 형태는 그대로 남아 있다. 낮은 구릉에 위치한 이 고분들은 굴식돌방무덤으로 사방의 벽을 돌로 쌓아 올린 뒤 한쪽에 널길을 내고 바깥을 흙으로 덮었다. 고분들이 발견된 주변지역이 백제 초기의 수도가 있었던 지역이고 몽촌토성, 풍납토성, 석촌동백제초기적성총, 가락동고분군 등이 모두 백제의 유적들이라는 점을 들어 방이동고분 역시 백제시대의 무덤으로 추정된다.
4호분, 5호분, 6호분 등에서 출토된 회청색경질토기인 굽다리접시가 전형적인 신라양식을 띠고 있고, 널길의 위치와 관대의 방향 등이 경주 지역의 무덤들과 비슷한 점으로 보아 이 무덤을 쌓은 주인공들은 신라 사람들이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이같은 점을 고려할 때 방이동고분은 백제와 신라간의 교류관계, 혹은 신라의 북진 에 따른 한강유역 진출을 증명해 주는 유적지이다.
서울 방이동 고분군은 1975년 잠실지구 토지구획정리사업을 하다가 발견된 고분 유적지이다. 이곳에서 1976년까지 8기의 고분이 조사되었고 1983년에 복원 공사를 시행하여 공원으로 만들었다. 고분이 있는 방이동 일대는 원래 해발 30~50m 가량의 나지막한 구릉이었으나 개발로 인해 지금은 평지가 되었다. 모든 무덤의 봉분은 원형이며 무덤의 내부에는 생토면 위에 다듬은 돌을 이용해 방형 또는 장방형의 널방을 쌓고 널길을 만들었으나 무덤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방이도 백제 고분군은 서울특별시 송파구 방이동에 있는 백제 전기의 고분군, 모두 여섯 기의 무덤이 발굴되었다. 무덤 양식은 굴식 돌방무덤이다. 토기류와 철제류가 주로 출토되었는데 일부 유물들은 신라 양식을 따르고 있어 신라 고분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방이동 백제고분군 인접한 곳에 올리픽공원이 있다. 방이동 백제고분구에서 역사도 되짚어보고 올림픽공원에 있는 미술관이나 기타 시설들을 연계해서 즐기는 것도 좋다.
지하철 5호선을 타고 찾아가는 답십리역의 2번출구 도보 3분의 고미술상가는 고서화, 고가구, 도자기 등의 고미술품과 독특하고 다양한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140여개 상점이 밀집하고 있다. 고미술상가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고미술로 39에 자리하고 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는 청계천 8가, 이태원, 아현동 등지에 흩어져 있던 고미술상점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답십리 일대에 모여들기 시작하여 형성되었으며 많은 점포가 밀집해 있다.
고미술품은 물론 나무 촛대, 괘종시계, 오래된 액자 등과 같은 오래되고 독특한 소품들이 많아 볼거리가 풍성하다. 일잔 상점에서는 보기 힘든 특이한 물건들이 많아 한국인은 물론 외국인들도 자주 찾는다. 일반적으로 인사동이 질 좋고 값비싼 고미술품들을 주로 판매한다면 답십리 고미술 상가는 몇천원부터 시작되는 작은 소품들이 맣은 것이 특징이다. 수도권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1, 2번 출구 바로 옆에 있으며 답십리 로데오거리와도 인접해 있어 같이 둘러보기 좋다.
답십리고미술상가는 도심 속 노천 박물관으로 불리며 국내 최대 규모의 골동품 거리로, 선조들의 생활상과 예술성을 엿볼 수 있는 국내 최대 규모의 골동품 거리다. 답십리고미술상가는 두 개의 권역으로 나뉘는데 지하철 5호선 답십리역 1/2젼출구에서 이어지는 답십리고미술상가와 4번 출구로 나와 장안평 방향으로 10여분 걸어가면 장안평고미술상가를 만날 수 있다. 1980년대부터 청계천과 충무로 ,명동, 황학동, 아현동 일대에 흩어져 있던 골동푸 가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고미술품은 골동품을 말하며 오래되고 유서 깊은 서화와 각종 기물로서 희소적, 미술적 가치를 지닌 물품을 말하며 골동, 고완, 고동, 고미술품 이라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주로 고동이라 불렸으며 현재는 고미술품이라는 용어로 많이 쓰인다. 공동이라는 말은 옛 그릇을 뜻하는 홀동이 와전되어 생겼다는 설과 뼈를 장시간 고아서 끓인 국인 골동갱이 오랫동안 애완된 고기에 비유되어 일컬어지면서 비롯되었다는 설이 있다.
답십리는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답십리동을 말하며 무학대사가 왕도를 정하려고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이곳을 밟았닺는 데서 유래되었다. 동대문구 답십리동에 있던 마을로서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왕도를 정하려고 도성에서 10리 떨어진 이곳을 밟아ㅆ다는 전설에서 마을 이름이 유래되었다. 답십리는 조선 초기 한성부의 성저십리에 속해 있었으나 조선 500년간 한성부에 속해 있었다. 소리 나는 대로 답시리라고도 부른다.
<여행지 개요>
여행지명 : 백제고분
장소 : 방이역의 3번출구 도보 15분
여행지명 : 고미술상가
장소 : 답십리역의 2번출구 도보 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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