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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만주 독립운동사적지 탐방 5

 

 

서란(수란)은 중국 지린성(길림성) 지린(길림)에 있는 시, 소가전자촌은 쑤란현에 위치하고 있으며 석주 이상룡의 마지막 우소가 있던 지역으로 석주는 이곳에서 1932년 5월 12일 임종을 맞이하였다. 이상룡은 늘고 병든 몸이 되어 더는 조선인의 광복운동을 영도할 수 없게 되자 서란현 이도향 소과전자에 와서 치료를 받았다. 치료를 할 때도 의연히 학교를 끌고 나가도록 민중을 교화했으며 청소년들에게 반일애국사상을 선전하면서 반일 투쟁을 진행하도록 고무했다고 한다. 이상룡은 서거 후 이곳 소과전자에 묻혔으나 1937년 조카인 이광민, 이광국 등이 아성현 취원창으로 묘소를 이전하였다.

 

 

하얼빈은 중국 헤이룽장성의 성도로 둥베이 평원 중앙, 헤이룽강 최대의 지류인 쑹화강 연변에 있다. 하얼빈은 만주족의 말로 '그물 말리는 곳'이라는 뜻이다. 제정 러시아의 둥칭 철도의 철도기지가 된 이래 상업, 교통도시로서 발전하였다. 하얼빈역은 1909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곳으로 많이 알려진 곳이다. 쑹화강의 수운과 창빈선, 빈저우선, 빈베이선, 빈쑤이선, 빈라선 등의 철도가 집중되어 중국 동북지방 교통의 중심지를 이룬다.

 

 

동북항일연군 기념관, 동북항일연군은 1935년 중국공산당은 쓰촨성 모아개에서 항일 투쟁을 위한 8.1선언을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의 중국 침략 주요목표 지역인 만주지방의 동북인민혁명군과 그 밖의 반일무장부대를 항일구국의 기치아래 연합하여 부대를 만들었다. 동북항일연군은 일제와 그리고 만주괴뢰국의 강력한 압박으로 1940년경 거의 궤멸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중국 공산당 중심의 항일연합전선이었으나 그 속에는 한국인 출신 공산주의자들이 활동하고 있었으며 후에 이들이 조선공산당의 창설을 이루는 인연을 가지고 있다.

 

 


731 죄증기념관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군 731부대에 의해 생체실험과 세균전으로 희생된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현재 희생된 3천여명의 명단을 보유하고 있다. 하얼빈 남쪽 교외에 있는 731부대는 일본 관동군이 인간을 통나무라는 뜻의 '마루타'라고 부르며 생체 해부실험과 생체 냉동실험 등 온갖 비인간적 생체 실험을 자행한 세균전 부대이다. 731부대는 2차대전에 패해 철수하면서 시설물 대부분을 폭파하고 증거물을 없앴지만 하얼빈시는 당시 731부대 본부 건물을 2001년부터 일본군 731부대죄증진열관으로 꾸며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각종 자료를 전시하고 있다.

 

 

도외구 거원진, "독립이 되기 전에는 나의 시신을 고국에 가져가지 말라"라는 말을 순국하면서 남겼다. 석주선생의 옛 묘지터인 취원창의 당시주소는 길림성 아성현 취원창이며, 현재주소는 헤이룽장성 하얼빈시 도외구 거원진이다. 간도참변 이후 서간도와 중부 이남출신 한인 농민들이 북만주 지역으로 이주하면서 하얼빈 부근의 농촌지역게서도 각종 민족운동이 전개되었다. 취원창 마을 입구에는 조선인 무덤들이 남아있다. 1990년 이곳에서 이상룡의 유해가 국내로 봉환되었다.

 

 

 

 

 

경북인 마지막 정착지 취원창구지는 의병으로 청송의진에서 중군장으로 활약한 백하 김대락 선생의 아들인 김문로 선생이 독립운동 근거지를 개척한 곳이다. 300여 세대의 한인 가구를 관리하고 독립 운동가를 양성하는 학교를 세울 정도로 그의 집안은 유명한 대부호였다. 독립 운동가로 활동하는 의사들의 가족들을 직접 부양하기도 했다. 김대락 선생은 독립 자금이 모자랄 때마다 사람을 보내 안동의 고향땅을 팔았다. 김문로 선생은 중국 문화혁명 당시 친일파의 누명을 쓰게 되고 고민을 당했다. 결국 1969년 "독립이 되면 고향으로 돌아가 살고 싶었는데 고국 땅에 발길을 돌려보지 못해 한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안중근의사 기념관은 1909년 10월 26일 오전 9시 30분 안중근 의사가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역에 자리했었다. 2014년 1월 19일 전격 개관했다. 그러나 개관 3년만인 2017년 3월 하얼빈 역사의 개 증축 공사로 인해 철거되었다. 기념관에 있던 전시 자료들은 하얼빈 시내에 위치한 조선민족예술관으로 옮겨져 전시중이다. 흉상, 사진 사료, 역사적 의거의 기획, 준비 과정이 기록되어 있다. 의거를 재현한 모형, 단지된 손을 형상화한 브론즈 조각품, '거룩한 손'이 전시되어 모든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 2019년 3월 30일 새로이 개관하였다.

 

 

일본 총영사관 구지는 지금은 화원소학교로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 총영사관 지하감방은 화원소학교 부속실로 사용하고 있다. 남자현 애국지사가 잡혀 6개월간 옥고를 치룬 곳이며, 안중근 의사도 잡혀 있었던 곳이다. 안중근 의사의 사형이 집행된 곳은 뤼순감옥이며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이었던 자오린 공원 곁에 묻어 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에 반장해 다오"라는 유언을 남겼다. 자오린 공원 한 켠에는 안의사가 사형 선고 이후에 마지막으로 남긴 서예 작품 '청초당'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돌이 외로이 서 있다.

 

 


조린(자오린)공원은 하얼빈시 중심 지역에 위치한 도시 공원으로 북쪽으로 와이환루, 남쪽으로 선린지에 서쪽으로 샹즈 거리에 접해 있다. 1906년에 건설되어 여러 차례 재개발을 거듭하다 1946년 3월 9일 항일 전쟁영웅 리자오린 장군이 이곳에 안장됨에 따라 그를 기리기 위해 따오리 공원에서 자오린 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동쪽에 화과산, 서쪽에 장미고개, 남쪽에 소남도, 북쪽에 유리온실, 중앙에 인공호수가 있다. 42m높이의 회전 관람차와 노천 공연장, 롤러스케이트장, 수족관, 어린이 공원, 새장, 범퍼카 등 다양한 놀이 시설들이 함께 해 가족 단위의 현지인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소피아성당은 하얼빈에 위치한 러시아 정교회 성단으로 전형적인 비잔틴 양식 건물이다. 1903년 러시아 동 시베리아 제4보병단이 하얼빈에 들어오면서 종군 성당으로 이용하기 위해 목재로 세웠다가 1923년부터 9년간 꾸준히 확장, 재건축을 진행하며 현재의 화려한 모습을 갖추었다. 1997년 성당 내부를 이전 모습으로 복원하면서 하얼빈 건축 예술관으로 이름을 바꾸었으며 고풍스럽고 우아한 자채를 자랑하는 하얼빈의 대표 건축물로 잘 알려져 있다. 성당 안에는 하얼빈의 역사가 담긴 사진과 사료, 그리고 최후의 만찬 성화가 함께 걸려있으며 야경 역시 매우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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