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는 역사의 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려시대 때 몽고군의 침입으로 수도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삼별초의 거점이기도 했으며, 조선시대 때에는 병자호란으로 왕세자 일행이 머물기도 했다. 병인양요 때 수탈당한 외규장각도 강화도에 있었다. 굵직한 역사가 남아 있는 강화도의 문화유산 답사코스로 제격이다.
용흥궁은 강화군 강화읍 동문안길 21번길 16-1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이름을 붙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고, 지붕을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용흥궁은 청덕궁의 연경다, 낙선재와 같이 살림집의 유형을 따라 지어져 소박하고 순수한 느낌이 든다. 경내에는 철종이 살았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강화 서도 중앙교회는 강화군 서도면 주문도길 256-1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화도는 조선 후기에 들어와 외세의 침략을 많이 받았다. 1866년 고종 3년에 병인양요가 일어나면서 프랑스 함대가 정족 산성 전투에서 패하여 철수할 때까지 1개월 정도 머물렀으며, 1871년 신미 양요 때에는 미국 함대가 초지진, 덕진진과 광성보를 차례로 함락시켰다. 이처럼 강화도는 19세기 말 우리 나라가 서양에 문호를 개방할 때 그 전진적 기지 역할을 했던 곳이고, 따라서 서양인들의 선교 활동도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이다. 이들 선교사에 의해 세워졌거나 그들의 영향에 의해 당시에 세워진 교회가 있다.
현존하는 교회 중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만 3곳에 이른다. 1900년에 세운 성공회 강화성당, 1906년에 세워진 강화 온수리 성공회교회, 서도 중앙 교회가 현존하고 있는 당시의 교회들이다. 서도궁앙교회는 1923년 2월 교인들의 건축 헌금으로 지어지기 시작해 같은 해 7월에 한옥 예배장으로 완공되었으며, 1978년 주문 교회에서 서도 중앙 교회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현재 대한 기독교 감리회 소속이다. 우리의 전통적인 목조 건물 가구 형식을 바탕으로 서양 교회를 지었다는데 커다란 의미를 지니고 있다.
고려궁지는 강화군 강화읍 강화대로 394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려 고종 19년에 몽골군의 침입에 대항하기 위하여 왕도가 강화로 옮겨졌다. 이때 옮겨진 도읍터가 고려궁지로 원종 11년 환도할때까지 39년간 사용되었다. 고려궁지는 규모는 작으나 송도 굴궐과 비슷하게 만들어졌고, 궁궐 뒷산 이름도 송악이라 하여 왕도의 제도를 잊지않으려 하였다고 한다. 병자호란 당시 강화성이 청군에게 함락된 사실이 있으며, 그 후 고려 궁터에는 조선 궁전 건물 및 유수부 건물들이 있었으나 1866년 병인양요 시 프랑스군에 의해 건물 등이 소실되고 지금은 유수부의 동헌과 이방청 건물만이 남아있다.
강화 부근리 지석묘는 인천 강화군 하점면 부근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묘제의 하나로서 사적 제 137호로 지정되었다. 길이 710㎝, 높이 260㎝, 너비 550㎝의 커다란 돌을 사용했으며, 형태는 북방식 고인돌로소 상고사와 고대사의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다. 2000년 11월 29일 호주 케인즈 제24차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에서 고창, 화순의 고인돌과 함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헤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강화도제적봉 평화전망대는 강화군 양사면 전망대로 797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타 지역에서 전망하기 힘든 이북의 독특한 문화 생태를 아주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고 비교할 수 있도록 준공되어 2008년 9월 5일 개관하였다. 지하층과 4층은 군부대 전요시설이며 1층에는 강화특산품과 북한의 특산물 등을 판매하는 토산품 판매장과 식당, 관리사무실, 통일염원소, 휴게실 등이, 2층에는 고성능 망원경과 전쟁의 참상과 흔적을 볼 수 있는 전시실이, 3층에는 이북의 온 산하가 한누에 가까이 볼 수 있는 북한땅 전망시설과 흐린 날씨에도 영상을 통해 북한 전경을 볼 수 있다.
2층에 위치한 전시실에는 강화의 국방체험과 북한의 도발, 남.북한의 군사력 비교, 통일정책을 볼 수 있는 끝나지 않는 전쟁과 우리는 한민족, 북한으로의 여행을 경험할 수 있는 통일로 가는 길, 끝으로 한국전쟁 당시의 배경과 국내외 전쟁 발발과정 및 그 이후 생애 잊지 못할 어려움을 겪고 있는 피해상황 등을 영상시설을 통해 볼 수 있는 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북한땅 조망실에서는 전방으로 약 2.3㎞ 해안가를 건너 흐르는 예성강, 개성공단, 임진강과 한강이 합류하는 지역, 김포 애기봉 전망대와 파주 오두산 통일전망대, 중립지역인 나들섬 예정지, 북한의 위장마을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연미정은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4호로 지정된 정자이다. 최초 건립연대는 정확히 나와 있지 않으며 임진왜란, 병자호란, 6.25 전쟁을 거치며 여러 차례 시련을 겪고 파손된 것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였다. 팔각지붕의 겹처마로 돌기둥 위에 10개의 기둥을 얹어 건축한 민도리집이다. 임진강과 염하강의 모양이 제비 꼬리 같다하여 연미저이라 이름이 붙여졌으며 월곶돈대 꼭대기에 세워져 있어 파주, 김포시, 북한 황해도 개풍군 일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연미정은 마니산, 전등사, 보문사와 함께 강화팔경의 하나로 손꼽히며 연미정에서 맞는 달맞이가 일품이다. 그동안 연미정은 군사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일반인의 출입이 엄격히 제한되어 있으며, 군부대의 허락을 받아야만 출입이 가능하였지만, 최근에는 신분증만 제시하면 일반인들도 출입이 가능해졌다. 연미정을 둘러싼 월곶돈대, 월곶진을 함께 둘러보는 것이 좋다. 역사적 장소인 연미정에서 바라보는 탁 트인 바다의 풍광과 수백년 된 정자 나무가 운치를 더한다. 정자 양쪽에는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웅장한 자채로 정취를 더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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