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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천주교 순교성지, 절두산, 갈매못, 갑곶, 나주, 황새바위, 남한산성

 

 

절두산순교성지는 서울 마포구 토정로 6, 합정동 96-1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강변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이 양화진까지 들어오는데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이곳에서 천주교인들을 처형하였으며 그로 인해 절두산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절두산에서 처형된 천주교 신자들은 대부분 프랑스 선교사와 교류한 일이 있거나 병인양요를 일으킨 프랑스 함대와 관련 혐의가 있는 신자들이었다고 한다. 병인박해가 시작되면서 베르뇌 주교와 홍봉주가 체포되었다. 병인박해 당시 절두산 순교자 수는 200명 내외이고 기록으로 확인 된 순교자 수는 29명이라고 한다.

 

 

절두산 성지는 마포구 합정동 일대의 한강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이 지역 한강변의 최고 절경으로 유명하며 절두산으로 불리게 된 유래는 1866년 병인양요 당시 프랑스 함대가 이곳 양화진까지 진격했을 때 흥선대원군은 양이로 더럽혀진 한강의 물을 서학 무리들의 피로 씻어야 한다며, 전국 각지에 척화비를 세우고 수많은 교인들을 붙잡아 양화진 근처의 이 산봉우리에서 목을 잘랐다고 하는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절두산 순교성지는 성당 건물과 한국천주교 순교자박물관, 건물 앞마당에 김대건 신부 동상을 중심으로 정원처럼 꾸며져 있는 십자가의 길로 구성되어 있다.

 

 

갈매못순교성지는 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610, 영보리 375-2에 자리하고 있으며, 1866년 3월 30일 병인박해 때 체포된 프랑스 선교사인 다블뤼 주교, 오메트르 신부, 위앵 신부 등 5명이 이곳에서 참수되었다. 이때 순교한 성직자 3명의 유해는 현재 명동 성당 지하실에 안치되어 있다. 갈매못이 형장이 된 이유는 1846년 6월에 프랑스 함대 세실 사령관이 3척의 군함을 이끌고 외연도에 정박해서 기해박해 때 엥베르, 모방, 샤스탕 신부 등 3명의 프랑스 선교사들을 살해한 책임을 묻는 편지를 상자에 남겨 놓고 돌아간 적이 있었다. 이로 인해 김대건 시부의 처형이 앞당겨졌다.

 

 

갑곶순교성지는 천주교인 우윤집, 최순복, 박상손이 갑곶돈대에서 효수되었다는 문헌에 따라 인천교구에서 이곳을 성지로 조성하였다. 박순집 베드로는 많은 순교자들의 행적을 증언하였고 인천교구 발전에 초석이 된 교우로, 박순집 베드로의 유해가 갑곶순교성지에 모셔져 있다. 기해박해 때 그의 부친 박 바오로는 새남터에서 순교한 주교, 신부들의 순교장면을 목격하고 현 관악구 신림동에 안장하였으며,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자 용산구 한강로3가 왜고개에 안장하였다. 박순집은 병인박해가 일어난 뒤 세남터에서 순교한 시신을 와서로 이장하였고, 박순집 가족도 양화진에서 순교하였다.

 

 

공주 황새바위 순교성지는 충남 공주시 왕릉로 118, 교동 산6-1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후기의 천주교 박해 때 모진 고문을 당하면서도 배교하지 않은 천주교 신자들이 처형되어 순교한 곳이다. 손자선과 이존창을 비롯한 이름이 전해지는 순교자만 248명이며 그밖에 많은 천주교인들이 순교하였다. 1985년 11월 7일 순교탑과 순교자 248위의 이름을 벽면에 새긴 무덤경당이 완공되었고 이어서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빛돌과 성모동산, 십자가의 길, 성체조배실 등이 조성되었다. 2008년 1월 교동본당에서 독립하였으며 해미성지, 성거산성지, 여사울성지, 신리성지 등과 함께 문화재로 지정

 

 

 

나주 순교성지는 기해박해때 나주에서 순교한 이춘화와 병인박해때인 1872년에 순교한 강영원, 유치성, 유문보 등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순교자 기념 경당이 자리한 곳이다. 경당 입구에는 60톤의 거석과 관 모양의 제대가 있고 경당 내부는 사방이 막혀있고 위쪽만 뚫려있다. 성당 내에는 초대  나주 본당 신부인 하롤드 대주교가 초대 주임 시절에 쓰던 타자기를 비롯해 기도서, 십자가, 성합, 제의,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는 기념관이 있다. 교육, 의료 등 자선을 통해 복음화에 앞장 선 까라따스 수녀회 한국 첫 본원이었던 한옥 기와집이 복원되어 당시 수녀들의 각종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남한산성 순교성지는 광주시 남한산성면 산성리의 남한산성에 있는 천주교 성지, 정조 15년 1791년 조선시대 최초의 천주교도 박해사건인 신해박해때부터 신도들이 남한산성에 추억되었다고 전하며 순조 1년 1801년 신유박해때는 이곳에서 첫 순교자가 나왔다. 헌종 5년 1839년의 기해박해와 고종 3년의 1866년의 병인박해등을 거치면서 약 300명의 신도들이 참수, 옥사 ,장사 등의 형태로 순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9년 11월 소성당이 완공되었다. 소성당에는 김성우, 최경환 두 성인의 유해가 있고, 야외 미사터에는 대형 십자가와 돌 제대가 조성되어 있다. 순교자 현양비 등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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