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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여행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 핀란드

 

 

핀란드는 북유럽 발트해 연안에 있는 스칸디나비아 국가로 1155년 스웨덴 십자군에 정복되어 스웨덴 일부로 병합되었고 1809년 러시아의 자치령인 대공국이 되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 후 독립을 선언하였고 1918년에 공화제를 실시하여 처음으로 독립된 통일국가를 이룩하였다. 수도는 헬싱키로 핀란드인이 대부분이며 스웨덴인과 러시아인이 조금 섞여있다. 종교는 핀란드루터교가 82.5%를 차지하며 그리스정교, 기타 기독교 등이 조금 있다.

 

 

정식명칭은 핀란드공화국이며, 핀란드어로는 수오멘 타사발타, 또는 호수의 나라라는 수오미라고 한다. 서쪽으로 스에덴, 동쪽으로 러시아, 북족으로 노르웨이, 남쪽으로 에스토니아와 국경을 접하고 남쪽으로 핀란드만을 사이에 두고 발트해에 면하며 서쪽으로 보트니아만에 면한다. 위치상 스웨덴과 소련이라는 2대 강국에 끼여 역사적으로 고난의 길을 걸어왔으며, 친서구적 국민감정이 강하다. 행정구역은 20개 주로 되어 있다.

 

 

위도상 북위 60~70˚에 위치하여 국토 전체가 세계에서 가장 북쪽에 있는 국가이지만 대서양에 가까운 데다 발트해에 맞닿아 있어 기후는 온난하다. 남부의 2월 평균기온은 -7℃, 7월 평균기온 17℃이고, 북부에서는 2월이 114℃, 7월이 13℃이다. 연 펼균강수량은 500~600mm이며 그 중 30~40%는 강설량이다. 발트해는 서해안에서 6개월, 남해안에서 4개월 동안 얼어붙는다. 시베리아 타이가 지역의 연장에 해당하여 삼림은 국토의 75%를 덮고 있으며, 그 가운데 소나무가 절반을 차지한다.

 

 

1939년 10월 소련은 핀라드와 발트 3국에 영토 일부의 양도를 요구했다. 핀란드만 거절하자 소련은 다음 달 12만명이 지키는 이 나라를 50만 병사로 침략해 석 달 만에 무릎 꿇렸다. 겨울전쟁이라 불리는 이 전쟁에서 소련 탱크에 맞선 핀란드 대전차병 70%가 죽었다. 정작 질린 쪽은 소련이었다. 육탄으로 탱크에 뛰어들어 포신 속에 총을 들이미는 핀란드 스키부대의 용맹함에 치를 떨었다. 전쟁이 끝나고 세어보니 핀란드 병사 한 명 죽을 때 소련 병사 여덟이 전사했다. 이어진 또 한번의 전쟁까지 포함해 핀란드인 10만명, 소련군 50만명이 사망했다. 소련은 그 후 핀란드를 건드리지 않았다.

 

 

볼가강 유역의 원주지를 떠나 차차 서쪽으로 진출하여 핀란드에 정착한 핀인들에게 로마 가톨릭교가 전파된 것은 12세기였다. 가톨릭 교세의 확장과 동시에 스웨덴의 영향력이 점차 커지기 시작하여 13세기에는 스웨덴 영토의 일부가 되었다. 스웨덴은 핀인들에게 자치를 허용하였으며 지주귀족을 중심으로 민족문화가 형성되었으며 종교개혁시대에는 루터파의 프로테스탄트가 전국에 골고루 보급되었다. 17세기 스웨덴의 정성기에는 핀란드 자치의회가 설치된 데 이어 현재의 투르쿠인 오보에 핀란드대학인 헬싱키대학교가 설립되었다.

 

 

 

재정러시아가 침략의 눈길을 돌려 여러 차례 병합을 기도하던 중 북방 전쟁의 결과 체결된 1721년의 뉘스타트 조약에 따라 러시아는 핀란드 남부의 영토였던 카렐리야지협을 탈취하고 뒤이어 나폴레옹전쟁이 한창이던 1809년에 핀란드 전국토를 병합하였다. 핀란드는 민족주의 정신이 발현되어 1935년에는 민족주의 정신의 구심으로서 50편의 시가로 민족서사시가 뢴로트에 의해 복원 편집되기도 하였다. 영웅의 나라라는 뜻의 칼레바의 나라를 노래한 서사시, 핀란드에 전승되어온 장대한 민족서사시로 핀인과 랩인의 싸움이 이야기의 중심을 이루며 신화적 요소와 영웅적 요소로 구성되어있다

 

 

재정러시아는 1835년에 핀란드 의회의 입법권을 정지시키고 1902년에는 핀란드군을 러시아군에 편입시키는 한편 러시아어를 공용어로 정하는 정책 등 러시아화 정책을 추진해 나갔다. 시벨리우스의 애국교향시 <핀라디아>가 만들어진 것은 민족정신의 발로였다. <핀란디아>는 조국 핀란드의 신비스러운 자연과 가혹한 운명을 깊이 공감하는 민족의 소리로서 민중으로 하여금 강렬한 조국애를 불러일으킨다는 이유로 공연이 금지되기까지 하였다. 1904년 러시아 총독이 암살되고 1917년 러시아혁명이 발발하자 독립을 선언, 1918년에 공화제를 실시하였다.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핀란드는 또다시 소련의 침입이라는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 소련은 나치스 독일의 침입을 예방한다는 구실로 공격해오자 제1차 소련핀란드 전쟁이 발발하였다. 1940년에 비푸리를 포함한 남동부 지역과 카렐리야 지협의 항코반도를 30년 동안 소련에 빌려주기로 하고 휴전조약을 체결하였다. 1941년에 소련과 전쟁을 일으켜 잃어버렸던 영토를 회복하였으나 1944년에 다시 소련에 항복하여 영토를 할양하고 배상금을 지불하였다.

 

 

제2차세계대전에서 독일의 편에 선 핀란드는 전쟁의 참화를 입어 생산능려과 자원의 1/10을 잃고 40만명 이상의 집과 토지를 상실하였다. 제15회 헬싱키 올림픽대회의 개최 후 공업화에 성공, 연평균 5%의 경제성장을 하였다. 1955년 국제연합과 북유럽회의에 가입, 북유럽회의 가입국이 된 핀란드 국민을 스칸디나비아 여러 나라에서 자유롭게 체제하며 일할 수 있는 사회적 지위를 받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었다. 1961년에는 유럽자유무역연합, 1973년 유럽공동체와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 1975년 헬싱키에서 개최된 유럽안전보장협력회의 헬싱키 선언에 따라 핀란드의 정치적 중립이 인정되었다.

 

핀란드는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다. 분단국가와는 외교관계를 맺지 않는다는 원칙을 지켜오다가 1973년 남북한을 동시에 승인하였다. 1976년 10월 밀수사건에 관련되어 북한의 대사관원이 추방당하였고, 1983년 4월에는 국제의원연맹회의 방해에 대한 보복으로 북한대사가 추방되었다. 1999년 북한은 핀란드 두제 북한대사관을 폐쇄하고 스웨덴 북한대사관이 업무를 겸임하고 있다. 핕란드는 코소보 사태를 비롯한 세계 주요 분쟁지대에 UN평화유지군으로 참여 국제활동에 적극 참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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