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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자 조선의 임금을 모신 사당인 종묘 여행

 


 지하철 1호선을 타고 찾아가는 시청역의 종묘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록된 조선의 임금님을 모신 사당이다. 서울 종로구 훈정동에 위치한 종묘는 조선시대의 왕과 왕비, 그리고 실제로 왕위에 오르지는 않았으나 죽고 나서 왕의 칭호를 올려받은 왕과 그 비의 신주를 모시고 제사를 행하던 왕실의 사당이다. 종묘는 왕조의 뿌리를 상징하는 시설이고 도읍지는 국가 통치의 기반이 되는 곳이다. 한양 천도 이후 태조는 종묘와 사직을 먼저 ,궁실을 다음에 짓고, 마지막으로 성벽을 쌓았다. 

 


한양 도성 건설은 조선 왕조 건국 후 시행한 국가 차원의 첫 대역사였다. 태조는 유교 이념에 따라 궁궐인 경복궁을 중심으로 왼쪽인 동쪽에 종묘를, 오른쪽인 서쪽에 사직을 그 다음 해에 세웠다. 종묘 공사는 천도하던 해 12월에 시작하여 이듬해인 태조 4년 1395년 9월에 마쳤다. 조선시대의 종묘 정전은 태종, 세종대에 이르러 건축 형식이 정착된다. 태종은 종묘 앞에 가산을 조성하여 종묘가 주변 언덕에 파묻혀 아늑한 기운이 깃들도록 한 다음 종묘의 건물 형식을 고쳤다.

 

 

현재 종묘를 구성하고 있는 중심 건물은 종묘 정전과 영녕전으로 태조가 종묘를 건설할 당시는 종묘 정전뿐이었다. 영녕전은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이 신위를 모신 별묘인데 세종 때 처음 건립되었다. 이 별묘가 지금의 영녕전이다, "조종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은 종묘에서 옮겨온 신위를 모셨다고 해서 조묘라고도 한다. 영년전 건립으로 조선 왕조의 종묘건축 제도는 종묘와 별묘를 두게 되고 지금은 정전과 영녕전을 합하여 종묘라고 부른다.


종묘 정문을 들어서면 삼도가 북으로 길게 나 있다. 널찍하고 거친 돌로 깐 삼도는 가운데가 양 옆보다 약간 높은 형태로 높낮이가 다르게 되어 있다. 가운데의 약간 높은 길은 신향로이고 동측의 낮은 길은 어로, 서측은 세자로이다. 어로는 제사 때 임금이 다니는 길이고, 세자로는 세자가 다니는 길이며, 신향로는 제향 때 향로를 받들고 다니는 길이다. 이 길은 어숙식, 정전, 영녕전으로 이어지는데 어숙실에 닿기 전에 오른쪽으로 난 갈림길에는 망묘루와 향대청이 있다.

 


망묘루는 제향 때 임근이 사당을 바라보며 선왕과 종묘 사직을 생각한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인데 건물중 1칸이 누마루로 되어 있다. 향대청은 종묘에 사용하는 향축폐와 제사 예물을 보관하고 제향에 나갈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으로 남북으로 긴 들을 사이에 두고 동쪽과 서쪽에 건물이 배치되었다. 어숙실은 재궁 또는 어재실이라고도 하는데 왕이 목욕 재계하고 의복을 정재하여 세자와 함께 제사 올릴 준비를 하던 곳이다. 제향에는 임금이 친히 올리는 친행과 임금을 대행하여 올리는 섭행이 있다.

 

종묘는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화려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종묘의 모든 건축은 지극히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다. 묘정 월대와 기단 위의 건물은 신로를 표시하은 선과 몇 개의 판위 그리고 장식이 배제쇤 건축 구조 등 과감히 생략된 조형과 단순한 구성으로 종묘에 구현해야 할 건축 의도를 철저하게 나타내었고, 단청 또한 극도로 절제되었다. 신로, 월대, 기단, 담 등 필요한 공간만 담은 구성과 구조 ,장식과 색채의 간결함은 종묘건축을 상징적 차원으로 승화시킨다. 

 



<여행지 개요>

여행지명 : 종묘
장소 : 서울 종로구 훈정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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