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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해간도 앞 바다는 한산대첩의 주요 배경인 견내량 해협이다.



 

 

해간도, 통영에서 거제대교를 건널 때마다 우측으로 다리가 연결된 섬을 보게 되는데 그 섬이 바로 해간도이다. 통영지역 250여 개 섬 중 육지마을 제일 가까운 거리에 있는 해간도는 용남면 연기마을과 2009년 9월 21일 다리로 연결되었다. 연기~해간 연륙교는 길이 267m, 폭 8m, 접속도로구간 217m의 라멘교를 더한 가박스거더교 형식으로 건설되었다. 교각은 횃불 형상의 곡면으로 가운데가 솟아오른 완만한 곡선 형태여서 바다 풍경과도 잘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남방파제에서 계류장을 보면 안은 원형처럼 상당히 넓다, 마주 보이는 곳이 거제도이다. 앞 바다는 유명한 견내량 해협이다. 견내량은 거제시 사등면 덕호리와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를 잇는 거제대교의 아래쪽에 위치한 좁은 해협이다. 길이는 약 3㎞, 폭은 약 180~400m 이다. 임진왜란 때 한산대첩의 주요 배경이다. 한산대전은 7월 5일부터 7월 13일까지 견내량에서부터 한산도 앞바다 그리고 안골포 전투를 벌이는 시발점이 되었다.

 

해협 양쪽에는 작은 섬들이 많고 물살이 거세 예로부터 이곳에서 생산되는 돌미역은 임금님의 진상품으로 올려졌다. 현재는 거제대교와 신거제대교가 걸쳐 있는 곳이다. 좁은 골목길로 해서 들어가면 섬의 서쪽 해안에 이른다. 물이 많이 빠진 탓에 넓게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굴양식을 위한 것인지 지주대가 바닥을 드러냈다. 해간도와 연기마을 앞 바다는 거센 바닷물결에서 자란 돌미역이 많이 생산되는 해역으로 봄이면 미역 따는 배들의 모습이 장관이다. 

 

섬은 그다지 크지도 않고 그렇다고 고지대도 아니다. 섬의 서쪽 밭이 있는 이곳은 매축을 통해 확보한 농경지인 듯싶다. 밭과 집들이 분리되어 있다. 그리고 경지가 비교적 넓어 대부분의 주민이 농업과 어업에 종사하며 굴과 홍합, 미더덕 등의 양식이 활발하다. 섬 이름은 외지에서 볼 때 만조 시에도 물이 들지 않는 것처럼 보여 붙여진 지명이라고 한다. 그리고 150여 년전부터 매년 음력 섣달 그믐날 저녁이면 마을의 평온과 만선을 기원하는 당산제를 올린다.

 

북방파제는 연기마을 공동어업구역이라고 한다. 이곳은 청정해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어 맛과 영양이 뛰어난 볼락, 도다리, 멸치 등이 잡힌다고 한다. 연륙교인 ‘해간교’가 보인다. 빨간색의 다리 아래는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실제로 이 연륙교가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한 번 바닷물이 빠지고 길이 생기는 해할 현상이 일어나 이웃 연기마을까지 사람이 건너다닐 수 있다. 이곳은 다리가 개통되면서 평일은 물론, 주말이면 관광객과 낚시객 수백여 명이 몰리고 있다고 한다.

 

통영과 거제 사이의 좁은 바닷길에 해간도가 있다. 해간도는 비록 조그만 섬이지만 자연산 미역으로 유명하다. 5월이 되면 주민들은 15미터 정도 되는 기다란 막대를 하나씩 들고 물이 빠진 바다에 나간다. 한참 동안 막대를 돌리다 끄집어 올리면 미역이 휘감겨서 올라온다. 물길이 너무 세차기 때문에 이곳의 자연산 미역은 맛이 일품이다. 임진왜란 격전지였던 해간도 앞을 흐르는 견내량의 자연산 돌미역은 양식 미역보다 더 쫄깃하고 맛도 좋다.

 

 

한산대첩 당일 이순신 장군은 판옥선들을 이곳 견내량으로 보냈다. 왜구들은 상대방의 선박에 접근해 기어올라 전투를 벌이는 전술을 선호해서 좁다란 갯내량에 조선의 판옥선이 등장하자 정신없이 쫓아왔다. 결국 73척의 왜선들이 견내량에서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돼 우리 수군에 패배하고 만다. 갯내량을 생각할 때마다 우리는 흔히들 한산대첩을 생각한다. 한산도의 ‘두억포’는 왜구들 머리를 수없이 벤 곳이며, ‘개미목’은 개미떼처럼 많은 왜구들을 수장한 곳, ‘하포’는 이순신이 군수품을 하역한 곳, ‘고동산’은 망군(望軍)이 이순신의 수루를 향해 고동을 분 곳임을 구전(口傳)을 통해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