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여행코스로 강화에서 꼭 가보아야할 8곳의 여행지를 살펴보자. 이번 강화 여행코스로 만나볼 강화 8경에는 갑곶돈대, 광성보, 마니산 참성단, 보문사, 연미정, 적석사, 전등사, 초지진 등이 있다.
갑곶돈대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갑룡길 26에 자리하고 있으며,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로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하는 곳이다. 갑곶돈대는 망해돈대, 제승돈대, 염주돈대와 함께 제물진의 관할 하에 있었다. 외부에서 강화로 들어오는 관문과 가까워 중요성이 더욱 강조된 돈대이다. 포좌가 있는 본래 갑곶돈대는 옛 강화대교 입구 북쪽 언덕에 있었다.
광성보는 강화군 불은면 덕성리 833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로, 효종 9년인 1658년에 설치됐다. 화도돈대, 오두돈대 ,광성돈대와 고종 11년인 1874년에 축조된 오두정포대를 관할하였다. 영조 21년 1745년에 성을 고쳐 쌓으면서 성문을 만들어 안해루라 하였다. 1871년 신미양요 때 가장 치열한 격전지였다. 광성보 안에는 광성돈대, 어재연, 어재순 형제의 충절을 기리는 쌍충비각, 신미순의총, 손돌목돈대, 용두돈대가 있다.
마니산 참성단은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로 675번길 18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니산은 해발 472.1m의 높이로 세 봉우리가 나란히 서있어 먼곳에서 보면 그 모양이 아름답고 웅장한 명산으로 참성단은 그 중간 봉우리에 위치하고 있다. 올라서서 보면 남쪽으로 서해의 여러섬이 보이고 맑은날에는 북쪽으로 개성의 송악산이 보인다. 참성단은 단군이 천제를 올리던 곳이라 전하고 있는데 경주의 첨성대처럼 기초는 하늘을 상징하여 둥글게 쌓고 단은 땅을 상징하여 네모로 쌓아 놓았다.
보문사는 강화군 삼산면 삼산남로 828번길 22, 매음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낙가산 서쪽바다가 굽어 보이는 곳에 보문사가 자리잡고 있다. 선덕여왕 4년 635년에 회정대사가 금강산으로부터 이곳에 와서 처음으로 절을 세우고 보문사라 하였다. 보문사는 우리나라 3대 관음성지로서 절을 창건 후 14년이 되던 해에 고씨성을 가진 어부가 바닷가에서 불상과 나한상 22구를 그물로 낚아올려 절의 우측 석굴에 봉안하였다고 한다. 절 뒤편에 마애석불이 조각되어 있다.
연미정은 강화군 강화읍 월곳리 242에 자리하고 있으며,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정자 이름을 연미정이라 했다. 인조 5년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기도 하다.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서울로 가는 배가 이 정자 밑에서 한강으로 들어갔다.
적석사는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210-3의 고려산 서쪽에 위치해 있다. 고구려때 천축국 스님이 고려산에 올라 다섯색의 연꽃이 피어있는 오련지를 발견하고 다섯송이의 연꽃을 날려 그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절을 세웠다 한다. 그 중 붉은 연꽃이 떨어진 곳에 적련사를 세웠는데 그곳이 이 절의 전신이다. 적석사 뒤편 산정상은 낙조봉이라 불리며 이곳에서의 낙조는 강도팔경의 하나로 꼽힐만큼 아름다운 곳이다.
전등사는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에 자리하고 있으며 단군왕검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삼랑성내에 아늑히 자리잡고 있다. 전등사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 381년에 아도화상이 처음 창건하고 진종사라 이름을 지었다. 그 후 고려 충렬왕비 정화궁주가 이 절에 귀한 옥등을 시주했다해서 전할전, 등불등자를 써서 전등사로 개명한 사찰이다. 대조루 밑을 지나면 대웅보전이 자리하고 있으며 명부전 맞은편에는 정족산 사고터가 복원되어 있다.
초지진은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초지진은 효종 7년 1656년에 안산에서 옮겨왔다. 초지진에서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고종 8년 1871년 신미양요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고종 12년 1875년에 일본 운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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