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역사유적지구의 익산지구에는 익산 왕궁리 유적과 익산 미륵사지가 포함된다. 왕궁리 유적은 수도 사비의 취약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축조한 별궁 유적으로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와 금마면 동고도리에 있는 유적으로 궁성의 규모는 남북 492m, 동서 234m이다. 내부에 정전 건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와 정원 시설, 공방 및 생활관련시설, 사찰 관련 시설 등의 유구가 있으며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이 남아 있다. 정원 시설에서 중국, 백제, 일본으로 이어지는 정원 문화의 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는 중국산 수석이 발견되었고, 공방터 남쪽에서 대형 화장실 3기가 발견되었다.
익산 왕궁리 유적은 백제 최대 규모의 유적으로 꼽히며 백제의 왕도였다는 왕도설 등으로 백제사의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이 유적에는 백제 무왕 때인 639년에 건립하였다는 제석정사터를 비롯해 그 안에 관궁사, 대궁사 등의 절터와 대궁 터가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진 토성터 등이 있어 이곳이 왕도였거나 왕도와 직접 관련이 있는 유적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다. 각종 문헌에서 옛날 궁궐터, 무왕이 별도를 세운 곳, 마한의 궁성터라고 적고 있다.
미륵사지는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기양리에 있는 동아시아 최대 규모의 사역으로 1탑 1금당식의 가람 3동을 나란히 병렬하여 3탑 3금당식의 독특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미륵이 세 번의 설법으로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신앙에 기반하여 가람 배치를 구현한 것으로 백제 문화의 독창성을 엿볼 수 있다. 백제 말기에서 조선 중기의 유물인 기와류, 토기, 자기, 석재, 목재 ,금속 등이 출토되었으며 미륵사지 석탑과 미륵사지 당간지주 등이 남아 있다.
미륵사지는 백제 무왕 2년 601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며 무왕과 선화공주의 설화로 유명한 사찰이다. 탑 1기와 금당이 짝을 이뤄 3개의 원으로 구성된 배치이면서 중앙에는 목탑, 좌우 양쪽에는 석탑으로 조성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미륵사지는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삼탑삼금당이 배치된 사찰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아울러 백제 무왕이 세운 곳으로서 최근 발굴된 사리기를 통해 정확히 밝혀져 백제사와 불교미술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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