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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전남 진도 여행코스, 대몽항쟁 삼별초의 근거지, 세방리낙조 전망대

 

 

대몽항쟁의 삼별초의 본부인 전라남도 진도를 찾아보자. 고려 무신 정권 붕괴 후 고려가 몽골과 불평등 조약을 맺은 데 반발해 대몽 항쟁을 벌인 삼별초는 전라남도 진도군을 근거지로 삼았다. '돌아온 백구 마을'로 이름난 의신면 돈지리 일대에는 치열했던 전투의 상처인 냥 작은 봉분들이 떼무덤이라는 이름으로 모여있다. 기상청이 일몰이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꼽았던 서쪽 끝 마을 세방리도 찾아보자.

 

 

진도는 전라남도 진도군에 속하는 섬으로 진도군의 주도이다. 북쪽에 장산도, 상태도, 하태도, 남서쪽에 조도 등 많은 군도가 섬을 둘러싸고 있다. 우라나라에서 제주도, 거제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1984년에 화원반도의 해남군 문내면과 진도군 군내면을 연결하는 진도대교가 개통되었다. 진도는 소백산맥의 지맥인 화원산맥의 침강으로 형성된 섬으로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곳곳에 만입이 발달하여 리아스식 해안을 이루고 있다. 동쪽의 485m의 첨찰산이 최고봉을 이룬다. 남쪽에는 457m의 여귀산, 북족에는 200m 내외의 산들이 분포하고 있다. 

 

 

 

진도의 문화재로는 용장리의 용장성, 남동리의 남도진성 등이 있다. 첨찰산 남쪽 기슭에는 쌍계사와 운림산방이 있으며 매년 4월에 '모세의 기적'으로 불리는 진도와 모도 사이의 바닷길이 명승 제9호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로는 전국적으로 유명한 천연기념물 제53호인 진도개, 천연기념물 제101호인 고니류 도래지, 천연기념물 제107호인 쌍계사 상록수림, 천연기념물 제111호인 상만리 비자나무 등이 있다. 중요무형문화재로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씻김굿 등이 있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민요인 '진도아리랑'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대몽항쟁은 고려가 몽골에 맞서 싸운 전쟁을 말하며 좁게는 고려-몽골 전쟁을, 넓게는 삼별초의 항쟁을 비롯한 공민왕 때의 원나라와의 전쟁까지도 포함된다. 대몽 항쟁이라 하면 고려-몽골 전쟁과 삼별초의 항쟁만을 가리킨다. 고려는 몽골이 침입해 오자, 수도를 강화도로 옮기면서 40여 년간 항전하였고 고려대장경을 만들어 부처님의 힘으로 몽골을 막아 내려 하였다. 1270년, 몽골과 싸움을 그친 고려는 개경으로 수도를 옮겼는데 삼별초 부대는 이를 겁하고 몽골군에 끝까지 저항했다.

 

 

 

삼별초는 몽골과의 항전 기간 중 가장 열심히  싸웠던 이들로 개경으로 수도를 옮기는 것에 끝까지 반대하며 대몽 항쟁을 계속했다. 지도자 배중손은 현종의 8대 손인 승화후 온을 왕으로 받들고 근거지를 강화도에서 진도로 이동하여 해상 왕국을 이루었다. 배중손이 몽골군의 공격으로 죽고 난 뒤 새로운 지도자 김통정은 남은 무리를 이끌고 제주에 들어가 항전했다. 그러나 결국 고려와 몽골 연합군의 공격으로 제주도마저 함락되었고 김통정과 그를 따르던 사람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비록 삼별초는 나라를 되찾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대몽 항쟁은 고려인의 자주 정신을 보여준다.

 

 

 

삼별초는 고려 무신정권때의 특수군대로 1219년 최충헌의 정권을 계승한 최우가 치안유지를 위해 설치한 야별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별초란 '용사들로 조직된 선발군'이라는 뜻이다. 그 뒤 야별초에 소속한 군대가 증가하자 이를 좌별초, 우별초로 나누고 몽골 병사와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한 병사들로 신의군을 조직하여 이를 좌우 별초와 합하여 삼별초의 조직을 만들었다. 삼별초는 항몽전에서 그 선두에서 유격전술로 몽골병을 괴롭혔으며 무신정권이 무너지고 몽골과 강화가 성립되고 고려정부가 개경으로 환도하자 개경정부 및 몽골과 대항하여 항쟁하였다.

 

 

돌아온 백구 마을은 1993년에 대전으로 팔려갔다가 7개월 만에 약 300km의 거리를 되돌아 진도로 돌아온 진돗개를 기리는 마을로 진돗개의 충성심과 귀소성을 잘 보여주는 일화로 많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으며 백구를 모델로 한 광고가 만들어지기도 했어며 백구의 이야기를 주제로 한 동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이 만들어졌다. 진도군은 돌아온 백구를 기리기 위해 2004년 11월 돈지망르에 '돌아온 백구상'을 만들었다. 2009년 8월 29일에는 돈지마을에 돌아온 백구 시비가 세워졌다.

 

 

진도로 근거지를 옮긴 삼별초군은 진도 용장산에 성을 쌓고 궁궐을 지었다. 그런 다음 해남, 강진, 완동 등 전라도 지역과 남해, 진주 등 경상도 해안 지역을 장악해 가며 세력을 넓혀 나갔다. 삼별초의 위세가 강해지자 1270년 9월 김방경을 추도사로 앞세워 토벌작전에 나섰다. 김방경과 몽골장수 아카이가 군사 천명을 이끌고 진도 공격에 나섰으나 많은 손실만 입은채 실패했다. 이듬해 5월 몽골장수 힌두를 총사령관으로 하고 홍다구가 앞정 선 고려 몽골 연합군 6천명이 전함 4백여 척을 이끌고 다시 공격에 나섰다. 사로잡힌 승화후 온은 홍다구에게 붙잡혀 참형에 처해졌다.

 

 

난을 주도했던 배중손 역시 도주를 하던 중 남도석성에서 부하들과 함께 최후를 마쳤으며 금갑방면으로 도주한 김통정 일행은 배를 타고 제주로 건너갔다. 떼무덤이 생길 정도로 숱한 목숨이 사라졌지만 삼별초의 항전은 배를 타고 제주로 빠져나간 김통정 일행이 제주도에 터전을 잡고 제2의 항몽을 준비하고 있었다. 제주도의 붉은 오름은 삼별초 항전은 종착점이 되었다. 제주에서 마지막까지 몽골에 대항했던 김통정이 부하 70여명과 최후의 결전을 치른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으로 주변의 흙이 붉은 피로 물들여졌다고 해서 붉은 오름으로 부른다는 전설이 남아있다.

 

 

 

세방리낙조 전망대는 진도군 지산면 가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기상청에서는 세방낙조를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낙조로 선정하였다. 세방낙조는 세방리 앞바다에 점점이 떠 있는 섬들의 모습이 특이하여 더욱 유명하다. 낙조를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시기는 가을철과 겨울철로 8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는 특별한 기상이변이 없는 한 거의 매일 낙조를 감상할 수 있다. 세방낙조는 지산면 가치리와 가학리 해안도로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낙조 전망대로는 세방리에서 조금 떨어진 세방낙조전망대와 상심동리 급치산 낙조전망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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