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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화도 여행코스 역사적으로 비운의 길을 찾아 걸어보자

 

 

강화도 여행코스로 비운의 역사길을 찾아 가보자. 초지대교를 건너 만나는 초지진부터 덕진진과 광성보를 거쳐 갑곶돈대까지 가는 길은 구한말 병인양요, 신미양요의 외세침략으로 치열한 격전이 벌어졌던 곳이다. 초지진에는 당시 포탄의 흔적이 있는 소나무가 남아 있을 정도다. 강화나들길 2코스로 강화도의 국방방어유적을 차근차근 둘러보는 여정이다.

 

 

초지진은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상으로부터 침입하는 적을 막기 위하여 구축한 요새로, 효종 6년 1655년에 설치된 것으로 보인다. 1870년대에 미국과 일본이 침략하였을 때 이 들과 맞서 싸운 곳으로 1871년에 미국 해병이 초지진에 침략해 왔을 대 전력의 열세로 패하여 점령당하였다. 이 때 군기고, 화약창고 등 군사시설물이 모두 파괴되었다. 일본이 조선을 힘으로 개항시키기 위하여 파견했던 운양호의 침공은 고종 13년 1876녕의 강압적인 강화도 수호조약으로 이어져 일본침량의 문호가 개방되었다. 1973년 초지돈을 복원하였다.

 

 

덕진진은 강화군 불은면 덕진로 34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려시대 강화해협을 지키는 외성의 요충으로서 원래 수영에 예속된 첨사의 진이었으며, 1677년 만호를 두고 군관 26명, 병 100명, 돈군 12명, 배 2척이 배치되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 장군의 부대가 밤에 이 진을 통하여 정족산성에 들어가 승리를 거두었고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국의 아시아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전개하여 미국 함대에 피해를 입히기도 했다. 신미양요때 성첩과 문루가 모두 파괴되었던 것을 1977년에 복원하면서 남장포대에는 조선군이 사용하던 대포를 제작하여 설치하였다.

 

 

광성보는 강화군 불은면 해안동로 466번길 27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광해군 10년 1618년에 고려시대의 외성을 보수하고 1556년 광성보를 설치했는데 이 보의 돈대는 1679년에 축조된 것이며 오두, 화도, 광성의 돈대와 오두정 포대가 이 보에 소속되었다. 1745년 완전한 석성으로 개축되어 당시 성문도 설치되었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당시 가장 격렬했던 격전지로서 1871년 4월 24일 미국의 로저스가 함대를 이끌고 1,230명의 병력으로 침공하였을 때 ,상륙부대가 초지진, 덕진진을 점령한 후 광성보에 이르러 백병전을 전개하였다. 어재연 장군 이하 전용사가 장렬히 순국하였다. 

 

 

신미양요 후 성책과 문루가 파괴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77년 안해루, 광성돈, 손돌목돈, 용두돈과 전사한 무명용사들의 묘, 그리고 어재연 장군의 쌍충비각 등이 모두 보수 정화되었으며, 이 때 세운 강화 전적지 정화기념비가 용두돈대 위에 서 있다. 1998년에는 해변쪽으로 넓은 휴식공간을 조성하여 관광객들에게 이용 편의를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광성보는 현재 사적 제227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4월 24일에는 어재연 장군을 비롯하여 장렬하게 전사한 무명용사들에 대한 광성제가 11시부터 봉행된다.

 

 

갑곶돈대는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18에 자리하고 있으며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가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고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전해진다.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 1232년부터 원종 11년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저선 인조 22년 1644년에 설치된 제물진인 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 1679년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 1866년 9월 병인양요 때 푸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히야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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