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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화도로 떠나는 역사 여행으로 전등사와 마니산, 갑곶돈대와 정족산성

 

 

 

마니산은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로 675번길 18에 자리하고 있으며 단군이 제천할 정도의 명산으로 용이 승천하고 용마가 나왔으며, 신선이 사는 곳으로 72대 왕후장상이 나올 곳이라 한다. 강화도 남서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마니산을 중심으로 한라산과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같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성조께서 하늘에 제천의식을 봉행하신 참성단이 있으며 '88 세계 장애자 올림픽을 비롯 매년 전국체전시 성화를 채화 봉송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등산로를 따라 8918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노라면 서해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정수사는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1258번길 142의 해발 467m의 높이로 우둑 솟고, 동서로 약 20리에 걸쳐 나래를 펴고 있는 마니산의 동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신라 선덕여왕 8년인 639년에 회정대사가 창건하였으며 원래 만조가 되면 섬으로 변하던 곳이었으나 동서로 제방을 쌓아 육지가 되었다. 마당에서 내려다보면 서해바다가 장쾌하게 펼쳐지는 전망 좋은 절이다. 대웅보존 안의 본존불 왼쪽에 묘셔진 자장보살상, 1848년 무렵에 조성된 아미타불 후불, 지장, 칠성 탱화가 있고, 삼성각에 1878년에 조성한 칠성, 독성, 산신탱화가 있다. 정수사 법당의 살문짝 꽃무늬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

 

강화도래미마을은 강화군 선원면 해안동로 1129-19에 자리하고 있으며 강화의 풍요로움과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농촌 체험 마을이다. 믿고 먹을 수 있는 바른먹거리를 생산하는 곳, 그래서 다시 찾고 싶은 마을이다. 마을에서는 각 계절별로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들이 준비되어 있는데, 사계절 즐길 수 있는 떡메치기, 두부 만들기 등을 비롯하여 계절별로 제철 농작물 수확, 미꾸라지 잡기, 썰매타기, 순무 김치 담그기 등 더위와 추위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는 놀이와 체험들이 준비되어 있다.

 

 

도래미마을은 다시 오고 싶은 아름다운 섬으로 사계절 내내 즐길 수 있는 체험거리가 준비되어 있으며 역사, 문화적으로 풍부한 볼거리를 자랑하고 있다. 값진 땀방울과 정성으로 재배한 건강한 먹거리가 있으며 숙박시설, 회의실, 야외공연장 등 다양한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강화군 선원면에 위치한 도래미마을은 대몽항쟁 당시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맡았던 선원, 군사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학을 한 용진진, 화도돈대, 용당돈대, 그리고 장어요리로 유명한 더리미장어마을 등 문화, 역사, 자연이 한데 어우러진 아름다운 농촌마을이다. '강화 1년 농사면, 3년 흉년도 걱정 없다'는 말처럼 풍성한 곳이다.

 

갑곶돈대는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18에 자리하고 있으며 갑곶돈은 고려가 1232년부터 1270가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포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해했다는 전설도 전해져 내려온다.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부터 원종 11년인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인 1644년에 설치된 갑곶진인 제물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인 1679년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인 1866년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명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에게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 터에 새로이 옛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강화성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국화리 산3번지 일원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려가 몽골에 저항하기 위해 강화로 천도한 시기인 강동 시기인 1232~1270년에 만들어진 도성제도의 일부로 내성에 해당된다.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 6월 몽골군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로 천도하면서 궁궐을 짓고 도성을 축조하였다. 1234년 1월부터 송도의 것과 비슷하게 도성과 궁궐, 각 관청을 건립하였다. 강화산성의 경우 1234년부터 본격적으로 축조하였다. 약 1.2km의 토성으로 축조하였는데 1259년 몽골에 의해 헐렸다. 조선시대에 들어와 석성으로 다시 쌓았다.

 

 

문수산성은 김포시 월곳면 포내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산성으로 둘레 약 2.4km로 강화의 갑곶진을 마주보고 있는 문수산의 험준한 줄기에서 해안지대를 연결한 성으로 현재 해안쪽의 성벽과 문루는 없어지고 산등성이를 연결한 성곽만 남아 있다. 명칭은 문수사에서 유리하였다. 이 성은 갑곶진과 더불어 강화 입구를 지키는 성으로 숙종 20년인 1694년에 축성괴었고 순조 12년인 1812년에 대대적으로 중수되었다. 다듬은 돌로 견고하게 쌓았고 그 위에 여장을 둘렀다. 세 개의 문루와 세 개의 암문이 있었다. 고종 3년인 1866년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과 치열한 격전을 치른 곳으로 유명하다.

 

정족산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삼랑산성이라고도 한다. 길이가 2.3km로 자연활석을 이용하여 축조된 성이다. 성 내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창건된 유서깊은 전등사가 있으며 고려 고종 46년인 1259년에는 이 성안에 이궁을 지었으나 터만 남아 있다. 조선 고종 3년 병인 양요시 양헌수장군이 이 성을 침입하는 프랑스군을 무찌른 전승지이다. 조선 현종 1년에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할 사고를 설치하였는데 무너진 것을 1998년 강화군에서 복원하였다.

 

전등사는 강화군 길상면 전등사로 37-41, 온수리 635에 자리하고 있으며 보물로는 대웅보전, 약사전, 범종,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목조지장보살삼존상 및 시왕상 일괄, 묘법연화경 목판, 국가사적으로 삼랑성이 전등사 일대를 에워싸고 있다. 인천유형문화재로 약사전 현왕탱, 약사전 후불탱, 총동수조, 업경대, 대웅보전 수미단, 인천문화재자료에 대조루, 대웅보전 후불탱, 강설당 아미타불탱, 기타문화재로 양헌수 승전비, 정족산가궐지, 선원보각지 등이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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