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을 바라보는 연천 역사의 하루 는 북녘땅을 찾아보는 연천의 하루 코스로 산세가 깊고 개발이 더딘 연천의 제법 긴 코스지만 꾸밈없는 자연을 그래로 경험할 수 있는 드문 코스이다. 골이 깊어 고대산이라 불리는 산을 중심으로 전망대들, 일제강점기부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급수탑과 전곡리 유적지까지 역사의 흔적을 찾아보자.
고대산은 연천군 신서면 평화로 3282-108에 자리하고 있으며, 금강산 가는 길목으로 경원선 철도가 끊겨 있는 철도중 단점인 연천군 신탄리역에 인접하고 있는 832.1m의 천혜의 자연경관을 간직하고 있는 생태계가 잘 보존된 곳으로 등산으로 북녘땅을 바라볼 수 있는 국내 유일한 곳으로 등산여행에는 안성맞춤인 산이다. 고대산의 유래는 '큰고래'라고 부르고 있으나, 이것은 신탄 지명에서 연루된 것으로 땔나무를 사용하는 온돌방 구들장 밑으로 불길과 연기가 통하여 나가는 고랑을 고래라고 하여 '방고래'를 이르는 것으로 고대산은 골이 깊고 높아 고대산이라고 한다.
고대산은 옛부터 광범한 산록과 울창한 산림으로 말미암아 임산자원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목재와 숯을 만드는 데도 접합한 곳으로 부락으로 형성된 주막집들이 있다하여 신탄막이라는 지명으로 불리웠으며, 실질적으로 한국전쟁 이전에는 참숲이 유명했던 고장으로 널리 알려진 곳이다. 1907년 11월 4일 의병진 150명과 임진강에서 의병들을 토벌하러 파견괸 일본군 보병 제20연대 8중대와 연천에서 격전한 후 신탄막에서 흩어지고 의병진 60명이 고대산에서 다시 일본 군대와 치열하게 교전한 곳으로서, 우리 선열들의 용맹스러운 민족정기가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열쇠전망대는 연천군 신서면 동내로 1375-1에 자리하고 있으며, '통일의 열쇠'가 되겠다는 의미에서 이름붙여진 열쇠전망대는 육군 열쇠부대가 북녘을 한 눈에 바라볼 수 있는 지역인 연천군 신서면 답곡리에 안보 교육과 망향의 한을 달래주기 위해 1998년 4월 11일 건립, 일반인에게 오픈하고 있다. 군인들이 간단한 신분확인 절차를 마친 뒤 전망대로 향하는 바리케이드를 열어주면 전망대로 오른다. 전먕대에 오르면 푸른 신록으로 둘러쌓인 북녘 땅이 한눈에 바랃보이는데 이곳에서 사진촬영이 금지되고 있다.
열쇠전망대 내부 전시실에는 북한의 생활 용품과 군사 장비가 전시되어 있어 북한의 생활상을 간단하게나마 엿볼 수 있으며 전망대 주변에는 교회, 성당, 법당 등 종교별로 평화 통일을 기원할 수 있는 종교 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열쇠전망대는 남방한계선 바로 앞에 위치하여 분단의 아픔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안보불감증에 빠진 현 세대들에게 통일에 대한 의지와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곳이다. 철책선 바로 앞 울타리에는 관광객들이 소원을 적어놓은 리본들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다.
태풍전망대는 연천군 중면 황산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천하무적 태풍부대에서 1991년 12월 3일 건립한 것으로 서울에서 약 65km, 평양에서 약 140km 떨어진 중면 비끼산의 가장 높은 수리봉에 위치한다. 처음에는 군사분계선을 기점으로 2km 지점에 남방 한계선과 북방 한계선이 설정되었으나, 1968년 북한이 휴전선 가까이 철책을 설치함에 따라 우리나라도 1978년에 부분적으로 철책을 설치하였다. 태풍전망대는 휴전선까지 800m, 북한 초소까지는 1,600m의 거리에 떨어져 위치하고 155마일 휴전선상 북한과 가장 가까운 전먕대로 유명하다.
태풍전망대에는 국군 장병들이 종교 집회를 가질 수 있는 교회, 성당, 성모상, 법당, 종각 등이 있고, 북녘에 고향을 두고 떠나온 실향미의 망향비와 한국전쟁의 전적비, 6.25참전 소년전차병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전시관에는 이곳으로부터 2km 떨어진 임진강 필승교에서 수습한 북한의 생활필수품과 일용품, 그리고 휴전 이후 수십 회에 걸쳐 침투한 무장 간첩들이 이용한 침투 장비 일부가 전시되어 있다. 민간인 통제구역은 비무장지대 바깥 남방한계선을 경계로 남쪽 5~20km에 있는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민간인출입통제선이라고도 부른다.
연천급수탑은 연천군 연천읍 연천로 273-7에 자리하고 있으며 1919년 인천-원산간 중간지점에 세워진 철도 급수탑으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증기기관차와 급수탑은 1899년 9월 서울-인천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처음 등장하여 교통수다으로서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1950년대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던 연천역사의 시설물들은 한국전쟁시에 폭격에 의해 모두 사라졌으나 급수탑만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건립 당시에는 기관차 뒤에 달린 탄수차레 물을 공급하는 동안 물물교환 등 상거래가 활발하여 시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6.25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북한의 최남단 지역이었고 경원선을 통한 북한의 군사물자가 대량으로 하역되었다. 이 때문에 하얀색의 이 급수탑을 좌표로 삼아 미군의 폭격이 극심하였고 아직도 건물에 탄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연천역 급수탑은 강원도 도계역 급수탑, 추풍령역 급수탑, 충남 연산역 급수탑, 경북 안동역 급수탑, 영천역 급수탑, 경남 삼랑진역 급수탑과 함께 철도 역사의 이해와 근대 교통사 연구를 위한 주요 유산으로 인정받아 2003년 1월 등록 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재인폭포는 연천군 연천읍 부곡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877m의 지장봉이 원류인 폭포로 한탄강 서쪽에 깊숙이 위치하고 있다. 높이 18m의 폭포가 이루어내는 맑고 시원한 시냇물과 주변의 울창한 수풀로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다. 특히 여름과 가을에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전설에 따르면 옛날 이 고을 원이 한 재인의 아내가 절색인 것을 보고 재인으로 하여금 이 폭포에서 줄을 타게하여 죽게하고 아내를 차지하려 하자 그는 자결하고 말았다. 그 후 사람들은 재인의 한이 서린 이폭포를 재인폭포라 불렀다고 한다.
서울에서 재인폭포까지는 버스로 1시간 30분 거리의 당일 코스이다. 군사작전 지역에 속해 토요일과 일요일에만 개방되지만 5~9월에는 평일에도 검문 없이 통과할 수 있다. 재인폭포에서 한탄강 줄기르 따라가다 보면 전곡선사유적지 한탄강 유원지, 숭의전과 같은 볼거리와 쉬어갈 곳이 많이 자리하고 있다. 보개산 너머 굽이굽이 연천읍 내산리 가는 길은 선경을 보는 듯하고 동막골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피서지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연천 전곡리 유적은 연천군 전곡읍 양연로 1510에 자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기 유적을 대표하는 유적지이다. 1978년 겨울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왔던 미군 병사에 의해 지표에서 석기가 발견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이 병사는 채집석기를 서울대학교 고 김원룡 교수에게 가져갔고 김원룡 교수와 영남대학교 정영화 교수에 의해 아슐리안계 구석기 유물로 밝혀지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구석기 유적지로 알려지게 되었다. 1978년 주먹도끼와 가로날 도끼 등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되었다.
전곡리 선사유적지는 전곡 시가지 남쪽, 한탄강이 감싸고 도는 현무암 대지 위에 자리하고 있으며 선캠브리아기에 형성된 변성암류인 편마암과 화강암이 기반암을 이루며 이 암반층을 강원도 평강 지역에서 분출하여 임진강과 한탄강의 강바닥에 형성된 현무암이 넓게 덮고 있다. 현무암 위에 적색 점토퇴적층과 사질층의 퇴적물이 형성되어 있는데 이 퇴적물의 상부 점토층이 구석기 문화층으로 석기가 집중적으로 발견되고 있다. 현재까지 11차에 걸친 발굴을 통하여 유적지의 성격규명을 위한 학문적 노력이 계속되어 왔고 3000여점 이상의 유물이 채집되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주최측 및 언론기사 등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