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를 찾아 떠나보자

 

 

남한강을 따라 흩어진 역사의 향기를 찾아 떠나는 길은, 여주 남한강변을 여행하는 것은 긴 세월에 걸친 역사와 만나는 일이다, 그 만남은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운치 있으며 오래 마음에 담아둘 수 있는 오래 오래 간직이 되는 일이다. 세종대왕과 소현왕후의 무덤인 영릉과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또 다른 영릉, 남한강변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영월루와 신륵사, 고달사지와 파사성이 이르며 남한강변의 아름다움도 함께 즐겨볼 수 있는 여행 코스이다.

 

 

여주 영릉과 또 다른 영릉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영릉로 269-50에 자리하고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다. 영릉은 세종대왕의 릉으로 세종대왕은 조선 제 4대 왕으로 군왕 가운데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겼으며 신라의 삼국통일로 민족의 원형을 이루었던 우리 민족은 세종대왕 때에 이르러 국토, 언어, 문화, 민족정신을 공통으로 하는 완전한 민족적 정체성을 확립하게 되었다.

 

 

영릉은 조선왕조의 능제를 가장 잘 나타낸 는의 하나로 칭성산을 주산으로 하고 청룡, 백호를 이루고 남쪽으로 안산인 북성산을 바라보고 있다. 입구의 홍살문, 정자각, 수복방과 비각, 수라간이 있다. 봉분 둘레에는 12면으로 꾸민 돌난간을 돌렸으며 난간석을 바치고 있는 동자석주에 한자로 12지를 새겨 방위를 표시하였으며, 합장릉임을 알 수 있는 혼유석2개가 있다. 장명등, 망주석, 석양과 석호가 두 쌍식 여덟마리를 밖으로 향하여 배치하였다. 동, 서, 북 3방향에 곡담을 둘렀으며 문인석 2쌍과 무인석 2쌍을 세우고 문무인석 뒤에는 각각 석마를 배치하였다.

 

 

세종전은 세종대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77년에 건립한 유물전시관으로 세종대왕의 어진과 당시에 발명항 사용한 과학기구, 악기류와 세종대왕 때에 간행된 책들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세종전 앞 야외유물전시장에는 해시계, 천상열차분야지도, 자격루, 관천대, 측우기, 혼천의, 간의 등 15점의 각종 복원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어 세종시재의 과학기구들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문화재청에서 대왕의 탄신일은 양력 5월 15일에 수모제전, 전주이씨대동종약원 영릉봉향회 주관으로 세종대왕 승하일 기신제는 양력 4월 8일에. 소헌왕후 기신제는 양력 4월 28일에 개최된다.

 

 

세종대왕의 업적은 한글창제로 정음청을 두고 집현전 학사들을 지도하여 1443년 훈민정음 28자를 연구 창제하였다. 개량활자를 만들어 월인천강지곡, 용비어천가, 농사직설, 고려사, 사강행실도, 팔도지리지, 석보상절, 의방유취 등 귀중한 책을 간행하고 경제욱전을 반포하여 농업을 크게 장려하여 전제와 세제를 정비하였다. 농업을 진흥하기 위해 천문, 지리 등 과학기술을 연구 보급하였으며 천문관측기구와 해시계, 물시계, 측우기 등을 만들었으며 역서와 천문도를 제작하였다. 대마도와 야인을 평정하였으며 음악을 정리하고 악기를 만들도록 하였다.

 

 

효종대왕과 인선왕후의 묘인 영릉은 아래 위로 만든 쌍릉 형식을 취하고 있다. 왕릉 바깥쪽으로 나지막한 담을 쌓았으며 봉분을 감싸고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하였다. 동자석에 십이방위 문자를 새겼으며 능에 갖추어진 석물은 석양, 석호 각 2쌍, 상석 1좌, 망주석 1쌍, 문인석, 석마 각 1쌍, 장명등 1좌, 무인석, 석마 각 1쌍이 들어서 있다. 효종은 인조의 둘째 아들로 소현세자와 함께 인질로 8년간 청나라 심양에 볼모로 잡혀가 있었다. 효종은 즉위후 대동법을 실시하고 상평통보를 주조하여 화폐를 보급하고 청나라 정벌을 계획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재위 10년만에 승하하였다.

 

 

영월루는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의 여주읍에서 신륵사로 가는 길에서 여주대교 조금 못미쳐 나타나는 고풍의 누각이 영월루이다. 영월루 입구에는 비석거리가 있고 창리 삼층석탑과 하리 삼층석탑이 있다. 영월루의 상층 누마루에 올라보면 숲속에 파묻힌 신륵사의 대가람이 바라보이고 여주 팔경인 학동모연, 팔대장림, 마암어등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영월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익공계 팔작집이다. 2층 누각 형식을 취하고 있다.

 

 

신륵사는 경기도 여주시 신륵사길 73의 여주읍에서 동북쪽으로 약 2.5km 정도 떨어진 남한강 상류 봉미산 기숡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 사찰로 신라 진평왕 때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신륵사 인근 강가의 암반에 벽돌로 쌓은 다층전탑이 있으며 주위의 경관도 뛰어난 사찰로 경내엔 화려한 극락전을 비롯하여 조사당 명부전, 다층석탑, 다층전탑, 석종, 대장각기비 등 보물로 지정된 문화재 8점을 보유하고 있다.

 

 

여주 고달사지는 경기도 여주시 북내면 고달사로 271-15에 자리하고 잇는 764년에 창건되었던 사찰로 현재는 사찰터만 들어서 있다. 고달사터에는 고려시대의 부도를 대표하는 국보 제4호 고달사지 부도와 보물 제 6, 7, 8호의 유물들이 있으며, 이들 석조 유물들은 넘치는 힘과 호방한 기상이 분출하는 가운데 화려하고 장엄한 기운을 간직하고 있다. 원감국사의 부도로 추정되는 고달사지 부도, 석불대좌, 원종대사 혜진탑비 귀부 및 이수, 원종대사 혜진탑 등이 있다.

 

 

여주 파사성은 경기도 여주시 대신면 천서리의 해발 250m 정도의 파사산 정산을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축성한 석축산성이다. 성의 일부는 강기슭에 돌출되게 자리 잡아 상하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전략적 요충지이다. 둘레는 1,800m 정도이며 성벽 중 최고 높은 곳은 6.25m 나 되며 낮은 곳은 1.4m 되는 곳도 있다. 동문지와 남문지가 있으며 동문지에는 옹성문지가 남아 있다. 파사성은 신라 제5대 임금 파사왕 때 처음 쌓았다고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주최측 및 언론기사 등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