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둘레길 7코스는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어천리와 단성면 운리를 잇는 13.3km의 지리산둘레길로 어천-운리구간을 말한다. 소요시간은 약 5시간이 걸리며, 성심원에서 학래정, 어천마을을 출발하여, 아침재, 웅석사, 웅석봉 하부헬기장, 웅석봉, 웅석봉 임도, 달뜨기 능선, 걱디명산 행선, 지리산의 인연, 신행당 고개, 점촌마을, 탑동마을, 단속사지, 정당매, 다불민족학교, 운리마을을 찾아간다.
지리산둘레길 7코스는 웅석봉 턱밑인 800고지까지 올라가야 하는 다소 힘든 오르막과 탑동마을까지 긴 내리막 임도를 품고 있다. 풍현마을과 어천마을을 이어주는 아침재, 웅석봉에서 흘러 경호강에 오르는 어천계곡, 길에서 내려다 보이는 청계저수지가 아름답다. 단속사터였던 탑동마을에서 동서 삼층석탑과 당간지주 그리고 산청 삼매 중 하나인 정당매를 만나 역사와 걷는 길이다.
성심원에서 경호강으로 내려가는 대문이 열려있다 오래 된 구조물로 대문 같기도 하고 건너편으로 이여졌던 다리의 흔적 같기도 한 곳이다. 경호강을 잇던 다리의 흔적이다. 성심원 앞은 쏘가리 낚시터로 유명한 곳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강바람을 맞으며 어천마을 방향으로 강변을 따라 걷는다. 작은 계곡을 만나 길은 우측으로 꺾여 산으로 향한다. 작은 다리로 된 갈림길을 만나면 아침재로 올라가는 방향으로 찾아들게 된다.
임도를 따라 천천히 올라가면 농장이 나타나고 아침재가 나타난다. 좌측으로 어천마을과 이어진다. 어천은 고속도로가 나기 전 지리산 자락의 오지 마을이었으며 지리산태극종주가 어천에서 시작된다. 태극종주는 지리산 종주길 중 가장 길고 난이도가 높은 길이다. 아침재란 고개 이름은 전국 곳곳에 산재해 있는 이름이다. 대부분 아침에 문안 드리러 넘던 고개 등의 유래를 가지고 있다. 금서면으로 가기 위해 웅석봉 높은 산을 넘자면 아침 일찍 출발해야 날 어두워지기 전에 도착한다
웅석봉을 찾아가면 조그만 암자인 웅석사가 나타난다. 웅석사 둘레에는 여러가지 꽃들이 자라고 있다. 널다란 임도를 따라 길을 찾아든다. 쉼터에서 잠시 쉬었다가 다시 찾아든다. 물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아랫쪽 계곡으로 향한다. 맑은 물 풍부한 계곡을 만나면 이 곳이 어리내골이다. 이곳 계곡물이 어천마을로 흘러 간다. 웅석봉 오름이 시작된다. 이 구간 때문에 지리산둘레길 7코스가 지리산 둘레길 중 가장 험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웅석봉의 웅자는 곰웅자를 쓴다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로 가팔랐다는 이야기이다. 느릎나무가 많아 유산이라 불렀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이길을 먼저 걸어 간 이들이 휴식 겸 기원 겸으로 쌓았을 서낭당 돌무더기가 자리하고 있다. 웅석봉 하부 헬기장에 도착하면 웅석봉이 올려다 보인다. 길가에는 취나물이 향기를 내품으며 지천으로 깔려있다. 웅석봉 능선을 바라보며 아랫쪽 임도로 방향을 잡아 편안한 길을 걸어내려간다. 건너편 청계 능선 아래 한재로 넘어가는 임도가 길게 이어지고 있다. 청계저수지 안쪽 깊숙히 자리한 단성면 운리 점촌마을이 나타난다.
정당매는 통정공 강회백이 이곳 단속사에서 공부할 때 심은 매화나무이다. 원정공 하즙선생께서 수식한 원정매, 남명 조식 선생께서 수식한 남명매와 함께 산청삼매라고 불린다. 강회백은 조선 전기 문신인 강희맹의 조부이다. 정당매란 이름은 강회백이 나중에 정당문학이 되었기 때문에 뒷 사람들이 부른 이름이다. 60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단속사는 신라의 고찰이다 속세와 인연을 귾는다는 사찰의 이름이 주는 결연함과 정당매가 전하는 의지가 향기를 품는다. 천녀의 법통을 이어오던 사찰은 폐사되고 불탑만 남아있다. 1568년 선조 때 유생들이 사찰을 파괴했는데 이후 정유재란 때 불에 타고 말았다고 전해진다. 남아 있는 불탑 두 기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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