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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만나는 홍류동계곡과 해인사소리길의 합천여행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만나는 합천으로 여행을 떠나보자. 합천은 국립공원 가야산 자락에 자리 잡은 해인사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팔만대장경이 있는 고장이다. 해인사로 가는 길에는 홍류동 계곡을 따라 해인사소리길이 나 있어 해인사로 가는 계곡풍경과 얼우러진 산책을 즐길 수 있다. 가야산의 수려한 풍광과 천년고찰 해인사, 그리고 팔만대장경의 오붓한 만남을 기대해 보자.

 

 

홍류동계곡은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의 가야산 국립공원에서 해인사입구까지 이르는 4㎞ 계곡으로 가을 단풍이 너무 붉어서 흐르는 물에 붉게 투엉되어 보인다 하여 홍류동 계곡이라 한다. 주위의 송림사이로 흐르는 물이 기암괴석에 부딪히는 소리는 고운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하며 선생이 갓과 신만 남겨두고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 전설을 말해주듯 농산정과 시구를 새겨놓은 큰 바위가 있다. 홍류동에는 주요문화재 자료인 농산정과 낙화암, 분옥폭포등 19명소가 있으며 특히 농산정 맞은 편에는 암각된 최치원 선생의 친필을 볼수 있다. 합천 8경중 제3경이다.

 

 

해인사소리길은 계절마다 경관을 달리하는 홍류동 계곡길  따라가며 마음의 소리를 듣는 길이다. 천년의 고고한 세월을 담은 이길은 오늘날 해인사소리길 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 세파에 시달린 여행객을 자연의 품속으로 안내한다.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 행사장인 야천리에서 해인사까지 6㎞남짓 이어진다. 수백년 된 송림 숲의 신선한 공기와 웅장한 바위를 휘감아도는 청아한 물길과 폭포, 산새 소리와 해인사의 풍경소리로 마음을 씻어내고 깊은 사색을 하기에 더없이 좋은 길이다. 대장경천년관, 홍류동매표소, 성보박물관, 성철스님사리탑, 일주문, 해인사, 학사대로 이어진다.

 

 

가야산은 법보종팔 해인사의 주산이며 해발 1,430m로 소백산맥의 한 지맥으로 팔경중 하나이다. 영산일 뿐만 아니라 조선조 세조대왕은 가야산은 펀하명산이며 생불주처라 하였다. 초대 주한 프랑스대사를 역임한 로제샹바르씨는 가야산의 승경과 고려팔만대장경판에 감복되어 마지막 유언에 나의 유해를 분말하여 해인사에 뿌려달라 하였으므로 1982년에 임종하고 해인사 천불동에 뿌려졌다. 무릉교에서 시작하여 홍류동 계곡은 홍송이 울창한 장장 10여리의 수석과 송리으로 이어져 다른 어떤 사찰과 명산에서도 보기 어려운 경관을 지니고 있다.

 

 

해인사는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에 자리하고 있는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로 신라 애장왕 3년 802년에 순응, 이정 두 스니이 창건하였으며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연유되어 법보종찰로도 유명하다. 고려 태조는 이 절에 머물렀던 희랑이 후백제 견훤을 뿌리치고 도와준 것에 대한 보답으로 이 절을 고려의 국찰로 삼았으며, 해인사는 법보종찰이요, 화엄십찰의 하나이다. 해인이란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유래된 것으로 해인사는 화엄사상을 천명하고자 이루어진 도장이다. 해인사를 우리나라 삼보사찰의 하나인 법보사찰이라 부르는 것은 고려대장경판인 법보가보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팔만대장경은 고려시대에 판각되었기 때뭄에 고려대장경판이라 하며, 판수가 8만여판에 이르고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였다 하여 팔만대장경이라고도 한다. 몽고의 침입으로 현종 대의 초조대장경판이 불타버려 다시 새긴 대장경이므로 재조대장경판이라고 하며, 현재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기 때문에 해인사 대장경판이라 불리고 있다. 이 대장경판은 해인사 법보전과 수다라장에 보관되어 있다. 현재 없어진 송나라 북송관판이나 거란판 대장경의 내용을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일 뿐 아니라 현재 세계에서 가장 오래 된 대장경판이다.

 

 

영암사지는 합천군 가회면 황매산로 637-97의 황매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절터이다. 가야산과 지리산을 연결하는 중간 지점의 화애산 남쪽 기슭에 있으며 영암사라는 절 이름도 주민들 사이에서 구전되어 오지만 자세한 연혁은 전하지 않는다. 탁본으로 남아있는 적연국사자광탑비의 비문을 통해 고려 현종 5년 1014년에 적연선사가 이곳에서 83세에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각선사비의 조각 중에도 영암사라는 절의 이름이 보이며, 홍각선사비가 886년에 세워졌다는 점에서 영암사의 연대를 짐작할 수 있다.

 

 

영암사지는 불상을 모셨던 금당, 서금당, 회랑터, 기타 건물터가 확인되어 당시 절의 규모를 알 수 있고 금당은 3차례에 걸쳐 다시 지어진 것으로 밝혀졌다. 절터에는 통일산라시대에 만든 쌍사자석등, 삼층석탑, 귀부, 당시의 선물 받침돌, 각종 기와조각들이 남아있다. 금동여래 입상은 8세기경의 것으로 절의 창건 연대를 살피는데 중요하다. 금당이 있는 상단 축대의 중앙 돌출부 좌우에 계단이 있고, 금당지 연석에 얼굴모양이 조각되었고, 후면을 제외한 3면에 동물상을 돋을새김한 점, 서남쪽 건물터의 기단 좌우에 계단이 있는 점 등이 신라 말에 성행한 밀교의 수법으로 세워진 절로 보인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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