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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금강산 유점사를 찾아보자


 

 

금강산 유점사는 강원도 고성군 서면 백천교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일제 강점기 60여 개의 말사를 거느린 전국 31본산 중의 하나로 신라 초기 남해왕 때 창건하였다. 이후 여러 차례 중건하였는데 특히 조선시대에는 태종 8년인 1408년에 효령대군이 금 2만냥을 들여 3,000여 칸으로 중건하였다. 경내에 아름드리 느릅나무가 많아 유점사가 되었다고 한다. 유점사는 외금강 효운동 계곡에 세운 금강산 4대 사찰 중에서도 가장 크고 웅장한 금강산 제일의 대찰이었다.

 

6.25전쟁 전에는 53불을 안치한 능인전, 수월당, 연화사, 제일선원, 반룡당, 의화당, 서래각 등 6전 3당 3루가 있었다. 창건설화를 간직한 53붕, 패엽경, 나옹 혜근이 스승인 지공으로 부터 받은 보살계첩과 인목대비가 서궁에 유폐되었을때 쓴 보문품, 신라 남해왕이 하사했다고 전하는 향로와 비취옥배, 나옹선사의 가사 장삼 등 수많는 보물들이 있었다. 까마귀가 쪼는 곳을 팠더니 샘물이 솟았다는 창건 설화의 오탁수라는 샘물이 있었다. 6.25전쟁으로 지금은 터만 남아 있다.

 

조선 왕조의 억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불교 성지인 금강산에 자리잡은 유점사는 큰 타격을 받지 않았다. 특히 조선 세조는 유점사를 왕실의 복을 비는 원당으로 지정하고 직접 금강산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조선 후기까지도 왕실 원당으로서의 역할을 맡아 왕실의 두터운 지원을 받았다. 인목왕후도 서궁에 유폐되었을 때 친필을 내린 바 있다. 임진왜란 때는 사명당이 이곳에서 승병을 지휘하였다. 한국 전쟁 중 폭격 피해로 40여 동의 건물이 사라져 폐허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