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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운현궁



 

운현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에 있는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의 사가이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이 출생하여 12세에 왕위에 오르기 전까지 성장한 잠저이다. 고종이 즉위하자 생부 이하응은 흥선대원군이 되었고, 생모 민씨는 여흥부대부인의 봉작을 받았다. 이곳에서 대원군은 서원철폐, 경복궁 중건, 세제개혁 등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으며 고종 19년 1882년에 임오군란으로 운현궁에서 중국 청나라 톈진으로 납치되었다. 한옥과 양관을 모두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원래는 궁궐에 견줄 만큼 크고 웅장하였다고 하며 대원군이 즐겨 쓴 아재당은 없어지고 한옥은 사랑채인 노안당, 안채인 노락당과 별당채인 이로당 만이 남아 있다. 대원군의 할아버지 은신군과 대원군의 아버지인 남연군의 사당도 있었으며, 고종이 창덕궁에서 운현궁을 드나들 수 있는 경근문과 대원군 전용의 공근문이 있었으나 모두 헐리고 없어졌다. 운현궁의 양관은 대원군의 손자인 이준의 저택으로 의친왕의 둘째아들 이우가 이어받아 덕성여자대학교의 건물이 되었다.  

 

운현이란 구름재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흥선대원군의 사저이며 운현이란 조선시대 서운관 앞의 고개를 가리키는 이름이다. 서운관은 후에 관상감으로 개칭되었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정치적 거점이었으며 조선 말기 이 땅에 들어온 외국 세력에게는 조선 정치의 상징적 공간으로 인식되어 많은 사건의 중심에 놓였던 곳이다. 현대는 노락당과 노안당, 이로당과 양관이 남아 있는데 건물의 규모나 짜임새, 사용된 목재에서 작은 창틀 하나에 이르기까지 소홀함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