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역사유적지구의 부여의 옛 이름인 사비도읍 시기의 부여지구에는 관북리 유적과 부여 부소산성, 부여 정림사지 ,부여 나성, 능산리 고분군이 포함된다. 관북리 유적에는 백제의 왕궁 시설로 보이는 대형 건물터가 남아 있다. 당시의 상수도 시설과 지하 저장 시설, 연못 등이 발굴되었다.
부소산성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산에 있는 삼국시대 백제의 수도 방어를 위해 축조된 복합식 성곽인 왕궁의 배후 산성으로 평상시에는 왕궁의 후원 역할을 하다가 위급할 때에는 방어시설로 이용되었다. 산성 안에서 다수의 건물터가 발굴되었으며 낙화암과 고란사가 이곳에 자리하고 있다. 성왕 16년 538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이며,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테뫼식 산성이 동서로 나뉘어 붙어 있고 주위에 포곡식 산성을 축조한 복합식 산성이다.
정림사지는 부여의 중심부에 위치한 절터로 중문, 석탑 ,금당, 강당을 남북 일직선상에 배열하고 그 주위에 회랑을 돌린 1탑 1금당식의 백제 가람의 전형적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절터 안에 한국 석탑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높이 562㎝의 정림사지 석불좌상이 남아 있다.
부여 나성은 부소산성에서 시작하여 도시의 북쪽과 동쪽을 에워싸는 길이 8㎞의 외곽성으로 축조되었으며 남쪽과 서쪽은 금강이 자연적인 방어시설 역할을 하였다. 평지나 능선에서는 판축공법을 사용하고 습지에서는 부엽공법을 사용하는 등 백제의 발달한 토목건축기술을 엿볼 수 있다. 나성은 본래 도시 방어의 목적 외에 성 안쪽 사람과 바깥쪽 사람, 산 자의 공간과 죽은 자의 공간을 구별하기 위하여 축조되었다.
능산리 고분군은 나성 밖에 자리하고 있으며 사비 시대를 대표하는 왕릉군으로 모두 7기로 이루어진다. 1호분인 동하총은 무덤 널방의 네 벽에 내세의 수호신으로서 사신도가 그려져 있고 천장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를 그린 벽호가 발견되었다. 이는 고구려와 문화 교류가 이루어졌고 도교도 어는 정도 수용되었음을 말해주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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