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강화역사여행으로 마니산 참성단, 갑곶돈대를 찾아보자

 

 

마니산이 단군이 제천할 정동의 명산으로 용이 승천하고 용마가 나왔으며, 신선이 사는 곳으로 72대 왕후장상이 나올 곳이라 한다. 참성단에서 기원을 하면서 강화도의 역사를 알아보자. 강화도는 서울 바로 옆에 있는 큰 섬으로 우리나라에서 네 번째로 큰 섬이다. 제주도, 거제도, 진도 다음의 크기이다. 강화도는 한강 하구에 자리하고 있고 고려의 수도 개성, 조선의 수도인 한양과 가까웠기 때문에 위기 때마다 굵직 굵직한 사건이 많이 일어났다. 선사시대부터 오늘날 까지 다양한 역사적 사실등을 알아볼 수 있다.

 

 

마니산은 강화군 화도면 마니산로 675번길 18의 강화도 남서단에 위치하고 마리산, 마루산, 두악산이라고도 한다. 백두산과 한라산의 중간 지점에 위치한 해발고도 472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높다. 한반도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어 마니산을 중심으로 한라산과 백두산까지의 거리가 같다. 마니산이 단군이 제천할 정도의 명산으로 용이 승천하고 용마가 나왔으며 신선이 사는 곳으로 72대 왕후장상이 나올 곳이라 한다. 마니산 정상에는 단군성조께서 하늘에 제천의식을 봉행하신 참성단이 있으며 '88세계 장애자 올림픽을 비롯 매년 전국체전시 성화를 채화 봉송하고 있는 민족의 영산이다.

 

 

등산로를 따라 918개의 돌계단을 올라가노라면 서해바다 풍경이 한눈에 들어와 아름다운 경치를 만끽할 수 있으며, 동쪽 기슭으로 신라 선덕여왕때 지은 정수사 법당 살문짝 꽃무늬의 아름다움도 즐길 수 있다. 산 정상의 북동쪽 5㎞ 지점에 있는 정족산 기슭에는 단군의 세 아들이 쌓았다는 삼령성이 있고 그 안에는 유명한 전등사가 있다. 북동쪽 기슭에는 정수사법당이 있고, 북서쪽 해안에는 장곶돈대 1기가 있다. 산세가 아기자기하고 주변에 문화유적지가 많아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고 있다. 1977년 3월 산 일대가 국민관광지로 지정되었다.

 

 

강화도래미마을은 강화군 선원면 앻안동로 1129-19에 위치하고 있으며 대몽항쟁 당시 팔만대장경의 판각을 맡았던 선원, 군사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한 용진진, 화도돈재, 용당돈대, 그리고 장어요리로 유면한 더리미장어마을 등 문화, 역사, 자연이 한데 얼우러진 아름다운 농촌마을이다. 강화도에는 예로부터 농사짓는 사람들은 "강화 1년 농사면, 3년 흉년도 걱정 없다"는 말을 하듯이 강화도의 풍성함을 말해주고 있다. 강화도 사람들의 마음도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시골의 여유가 묻어나는 곳으로 행복함을 한껏 충전해 갈 수 있을 것이다.

 

 

도래미마을이란 섬 도, 올 래, 아름다울 미로 도래미란 아름다워서 또 오게 되는 섬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마을이다. 연리, 지산 1, 2리, 신정 1, 2리의 총 3개의 마을이 하나로 이루어져 있다. 사계절을 쉬지 않고 농촌체험을 통해 도시와 농촌 간 도농교류를 하는데 역할을 하고 있다. 농촌체험휴양마을 평가에서 경관 및 서비스부문, 체험, 숙박, 음식부문에서도 1등급으로 선정받았다. 팜스테이마을 최우수 마을로도 지정 받아 자부심을 가지고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편안히 농촌을 체험하면서 휴양을 할 수 있는 최우수 농촌체험휴양마을로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다.

 

 

갑곶돈대는 강화군 강화읍 해안동로 1366번길 18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려가 1232년부터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겨 몽고와의 전쟁에서 강화해협을 지키던 중요한 요새로, 대포 8문이 배치된 포대이며, 돈대는 작은 규모의 보루를 만들고 대표를 배치하여 지키는 곳이다. 삼국시대 강화를 갑비고차라 부른데서 갑곶이라 이름이 전해오는 것으로 보기도 하고, 고려 때 몽고군이 이곳을 건너려고 하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안타까워하며 우리 군사들이 갑옷만 벗어서 바다를 메워도 건너갈 수 있을 텐데라 한탄했다는 말에서 유래했다는 전설도 있다.

 

 

갑곶돈대는 고려 고종 19년인 1232년부터 원종 11년인 1270년까지 도읍을 강화도로 옮긴 후 조선 인조 22년인 1644년에 설치된 제물진인 갑곶진에 소속된 돈대로 숙종 5년 1679년에 축조되었다. 고종 3년 1866년 9월 병인양요 때 프랑스의 극동 함대가 600여며의 병력을 이끌고 이곳으로 상륙하여 강화성과 문수산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10월에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은 양헌수 장군의 부대에 패하여 달아났다. 1977년에 옛터에 세로이 예모습을 되살려 보수, 복원이 이루어졌다. 지금 돈대 안에 전시된 대포는 조선시대 것으로 바다를 통해 침입하는 왜적의 선박을 포격하던 것이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주최측 및 언론기사 등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