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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성주 포천계곡과 함께 만나는 회연서원과 성주 한개마을

 

 

성주 포천계곡과 더불어 회연서원과 성주 한개마을이 있는 경북 성주로 여행을 떠나보자. 이번에 떠나볼 성주 회연서원과 성주 한개마을과 함께 살펴볼 성주 포천계곡은 경상북도 성주군 가천면 법전리에 자리하고 있는 가야산의 여러 계곡 중 대표적인 명소로서 물이 맑고, 풍부할 뿐만 아니라 웅장하고 힘찬 가야산 전경과 어울려 옛 성주 선비들이 심신과 학문을 도야하는 장으로 삼았던 곳이다. 조선 후기 문신이자 당대 최고의 선비였던 응와 이원조 선생이 만년을 보내 만귀정이 상류에 있으며, 만귀정 옆에는 만귀폭포에서 폭포수가 흘러내려 마음을 서늘하게 한다.

 

 

성주 포천계곡은 길이가 7km로 우거진 숲과 어울려 여름철 피서지로 그 이름을 알리고 있다. 계곡의 반석에 심청색 무늬가 있어 마치 베를 널어 놓은 것 같다 하여 포천계곡이라고 부른다. 크고 작은 바위와 커다란 너럭바위가 널려 있으며, 곳곳에 소가 형성되어 있으며 작은 폭포가 있다. 포천구곡은 포천계곡의 뛰어난 경치를 가지고 있는 9곳을 말한다.

 

 

회연서원은 성주군 수륜면 동강한강로 9 신정리에 위치하고 있다. 1974년 12월 10일 경북유형문화재 제51호로 지정되었다. 신정리 봉비암 아래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한강 정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정염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현판은 한호가 쓴 것으로 유명하며, 1977년 사당과 동, 서무를 고쳐 세우고 담장을 쌓았다. 정구의 문집판인 심경발휘가 보관되어 있다.

 

 

 

김굉필, 정여창, 이언적, 이황과 더불어 영남 5현 가운데 1명인 정구가 1583년인 선조 16년에 세워 제자들을 교육하던 회연초당이 1627년인 인조 5년에 지방사림의 여론에 따라 정구를 주향으로 서원이 되었으며, 1690년 숙종 16년에 사액을 받았다. 경내에는 지경재, 명의재, 향현청 등이 있었으나, 1868년 고종 5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 양현청은 없어졌다.

 

 

성주 한개마을은 성주군 월향면 대산리에 있는 한옥 보존마을이다. 2007년 12월 31일 국가민속문화재 제 255호로 지정되었다. 영취산 아래 성산이씨가 모여 사는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조선 세종 때 진주 목사를 지낸 이우가 처음 자리잡은 후 대를 이어 살아왔으며 현재 원봉공 이정현 후손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있다. 조선시대에 지어진 100여 채의 전통 고가각 옛 모습 그대로 보돈되어 있으며, 각 가옥들이 서로의 영역을 지켜가며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한개마을은 영남의 최고 길지로 이름을 알리고 있으며, 조선 영조 때 사도세자의 호위무관을 지낸 이석문, 조선 말의 유학자 이진상 등 명현을 많이 배출하였다. 경상북도 문화재로 지정된 건조물과 민속자료 등이 많으며, 월봉정, 청경재, 서륜재, 일관정, 여동서당 등 다섯 동의 재실이 있고, 이석문의 북비고택, 이진상의 한주종캑, 20세기 초 목조 건축인 월곡댁, 가장 오래된 교리댁 등이 경상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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