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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고양 서오릉에는 조선왕조의 숨결이 깃든 능이 자리하고 있다.

 

 

조선왕릉은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인정받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에 따라 2009년 6월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 519년의 역사를 지닌 조선은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았다. 조상에 대한 존경과 숭모를 매우 중요한 가치로 여긴 조선은 역대 왕과 왕비의 능을 엄격히 관리하였다. 그리하여 42기 능 어느 하나도 훼손되거나 인멸되지 않고 모두 제자리에 완전하게 보존되었다.

 

 

조선 왕릉의 구성은 능침공간은 왕과 왕비의 봉분인 능침과 능상이 있는 성역공간, 제향공간은 죽은 자와 산자가 함께 하는 영역으로 제사를 지내는 공간, 진입공간은 왕릉의 관리와 제례 준비를 위한 공간이 그것이다. 재실은 제사의 준비와 관리, 능참봉이 상주하던 곳, 금천교는 속세와 성역의 경계, 홍살문은 신성한 지역임을 알리는 문, 향.어로는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길, 비각, 정자각, 무석인, 문석인, 능침, 곡장은 봉분을 보호하기 위한 담장

 

 

조선왕릉은 우리의 전통문화를 담은 독특한 건축양식과 아름다운 자연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600여 년 전의 제례가 오늘 날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살아있는 문화유산이다. 조선 왕족의 무덤은 모두 120기에 이르며 이 가운데 왕과 왕비의 능이 42기이고 왕세자와 왕세자빈의 원이 14기이며, 왕족의 묘가 64기이다. 42기의 능 가운데 북한 개성에 있는 태조 첫 번째 왕비 신의고황후의 능인 제릉, 정종과 정안왕후의 능인 후릉을 제외한 40기의 능이 남한에 있다.

 

경릉은 추존 덕종과 소혜왕후의 능으로 덕종은 세조의 맏아들로 1455년에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왕위에 오르기 전 20세에 세상을 떠났다. 의경세자는 둘째 아들 성종이 임금이 되면서 덕종으로 추존되었다. 소혜왕후는 세자빈으로 책봉되었으나 의경세자가 덕종으로 추존되자 인수대비가 되었다. 성품이 총명하고 학식이 깊어 부녀자들의 예의범절을 가르치는 내훈을 책으로 펴내고 한문 불경을 한글로 풀어쓰기도 했다.

 

창릉은 예종과 두 번째 왕비 안순왕후의 능으로 예종은 세조의 둘째아들이다. 세자였던 형이 일찍 세상을 떠나자 세자로 책봉된 후 19세에 왕위에 올랐다. 예종은 재위 1년 2개월 동안 각 도의 병영에 속산 전답인 둔전을 일반 농민이 경작하게 하여 백성들을 경제적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는 등의 업적을 세웠다. 안순왕후는 세자 후궁 소훈이 되었고, 예종이 즉위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창릉의 예종 능침의 고석은 북고리 무뉘로 조각되어 있다.

 

 

익릉은 제19대 숙종의 첫 번째 왕비 인경왕후의 능으로 11세 때 세자빈이 되었다가 숙종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20세 때 천연두를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숙종사이에 공주 둘을 두었으나 모두 오래 살지 못했다. 일릉의 정자각 양 옆에 익량이 붙어 있으며 향. 어로는 계단식으로 조성되어 있다.

 

 

명릉은 제19대 숙종과 두 번째 왕비 인현왕후와 세 번째 왕비 인원왕후의 능으로 인현왕후는 인경왕후가 일찍 세상을 떠나자 가례를 올리고 숙종의 두번째 왕비가 되었다. 인현왕후는 기사환국으로 폐위되었다가 갑술환국때 복위되었다. 인원왕후는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영조가 왕위에 오른 후 대왕대비가 되었다. 명릉의 향. 어로는 조선 왕릉 향. 어로의 전형을 보여준다. 2도로 되어 있는 향. 어로의 옆에 신하들이 걸어갔던 변로가 조성되어 있다.

 

홍릉은 제21대 영조의 첫 번째 왕비 정성왕후의 능으로 정성왕후는 숙종의 둘째 아들인 연잉군과 가례를 올렸다. 경종이 세상을 떠나고 영조가 왕위에 오르자 왕비가 되었다. 평생 숙종과 경종의 왕비를 극진히 모시며 내명부를 지켰다. 소생이 없이 66세로 세상을 떠났다. 홍릉은 원래 영조의 능을 조성하려고 비워 두었으나 영조는 세상을 떠난 후 동구릉의 원릉에 능을 조성하였다. 홍릉은 왕의 능침 자리가 비어 있다.

 

순창원은 제13대 명종의 아들 순회세자와 공회빈 윤씨의 원으로 순회세자는 제 13대 명종과 인순왕후의 아들로 7세 때 세자로 책봉되었으나 13세에 세상을 떠났다. 공회빈은 세자빈이 되었으나 순회세자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왕비가 되지 못하였다.

 

수경원은 제21대 영조의 후궁이자 추존 장조인 사도세자의 생모 영빈 이씨의 원이다. 영빈 이씨는 궁녀가 되었다가 영조의 후궁이 되어 영빈이 되었다. 여조 사이에서 1남 6녀를 낳았으며 69세로 세상을 떠났다. 대한제국 선포 후인 1899년에 사도세자가 장조의 황제로 추존되자 연빈도 추존되어 시호를 소유, 원호를 수경원이라 하였다.

 

대빈묘는 제19대 숙종의 후궁이자 20대 경종의 생모로 옥산부대빈 장씨인 장희빈의 묘이다. 옥산부대빈은 숙종의 후궁이 되었고 경종을 낳아 희빈이 되었다. 기사환국으로 인현왕후가 폐위도자 왕비로 책봉돠었다가 갑술환국때 다시 희빈으로 강등되었다. 인현왕후가 세상을 떠난 후 왕후를 무고한 죄로 43세로 세상을 떠났다. 경종이 왕위에 오른 후 옥산부대빈으로 추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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