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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공산성은 백제의 공주성을 지키던 성이며 영은사는 호국사찰이다.



 

공산성은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53-51에 자리하고 있으며, 공주 10경중의 하나이다. 공산성은 백제 문주왕 1년인 475년에 서울의 한산성에서 지금의 공주인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뒤 성왕 16년인 538년에 다시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지금의 부여인 사비로 도읍을 옮길 때까지 문주왕, 삼근왕, 동성왕, 무령왕, 성왕 등의 5대 에 걸쳐 64년간 공주의 지킴이 역할을 하였던 성이다. 금강변 야산의 능선과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이다.

 

공주의 역사와 함께 하고 있는 공산성은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에는 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1624년 이괄, 한명련 등이 일으킨 이괄의 난을 피해 인조가 머문 이후 쌍수산성이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던 성이다. 임진왜란 직후에 돌로 다시 고쳐 쌓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금강을 내려 다 볼 수 있는 위치에 자리하고 있어 금강쪽에서 침입하는 적을 방비하기 쉬운 곳에 세워졌으며 밤의 야경이 아름다운 곳으로 정평이 나 있다. 

 

공산성을 한 바퀴 도는 시간은 아주 천천히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 걸린다. 공산성 안으로 웅진 도읍기로 추정되는 왕궁지를 비롯해 백제시대 연못 2개소와 사찰 영은사, 조선 인조가 이괄의 난을 피해 머물렀던 쌍수정과 사적비, 남문인 진남루, 북문인 공북루 등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진남루, 공북루 등의 남문, 북문은 남아있지만 동문과 서문은 터만 남아있다. 적에게 보이지 않게 누각 없이 만든 암문, 성벽을 돌출시켜 쌓은 치성, 고대, 장대, 수구문 등의 방어시설이 있다.

 

포곡식산성은 성곽안에 계곡을 감싸고 축성된 것으로 규모가 산정식보다 크다. 성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계곡과 주변의 산세지형을 이용하여 성벽을 둘렀기 때문에 성내에 수원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으며 외부 노출을 방지해 주며 성곽의 대부분은 산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포곡식 산성은 대형산성으로 경북 성주의 독용산성, 경주의 부산성, 부여의 석성산성, 행주산성, 옥천산성, 남한산성 등이 있다. 테뫼식은 머리띠 산성을 말한다. 

 

영은사는 충청남도 공주시 금성동 쌍수산 공산성 내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마곡사의 말사이다. 선조 25년인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들이 모여 훈련을 받고 승병장 영규의 지휘 아래 금산전투에 참여하였다. 광해군 8년 1616년에 이 절에 승병장을 두고 도내 사찰을 관리하게 하였다. 인조 2년인 1624년에 이괄이 난을 일으켰을 때 인조가 이 절로 피난을 오기도 하였다. 이때 절 이름을 영은사로 고쳤다.

 

영은사는 호국사찰로 승병이 계속 주둔하고 있었으며 건물로 원통보전과 관일루 등이 있다. 원통보전은 충청남도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전각이다. 관세음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상 뒤에는 후불탱화와 칠성탱화, 신중탱화, 산신탱화, 독성탱화가 걸려 있다. 이중 후불탱화는 고종 25년 1888년 약효가 그린 것이고, 나머지는 최근 제작된 것이다. 서산의 문수사에서 제작된 동종이 전해져오며, 석탑 부재와 장대석, 초석 등이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