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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사천 역사여행

 

 

사천시는 바다와 육상 ,하늘길이 연결되어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며 청정바다의 싱싱한 해산물, 한려수도의 비경과 유람선 관광, 사천바다케이블카, 천년고찰 다솔사, 고려말 조선초의 매향비, 항공우주박물관 등의 문화유산과 관광자원이 풍부한 도시이다. 

 

선진리토성은 통일신라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 12조창 중 하나인 통양창이 설치되었다. 성내에 판축 기법을 설명해 놓은 판축전시관이 있다.

 

사천해전은 1592년 5월 29일 이순신장군이 최초로 거북선을 출전시켜 승리한 해전이다. 곤양에서 나오는 왜군 정탐선 1척을 격침한 후 사천선창으로 진격하였으나 왜군은 전투를 포기한채 농성에 동립하여 이에 이순신 장군은 퇴각하는 척하며 왜군을 판옥선의 활동하기 좋은 해역까지 유인하여 거북선을 최전방 돌격선으로 삼고 왜선 13척을 격침시켰다. 이후 여러지역에서 23전 23승이라는 세계 해전사에서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해전술의 토대가 되었다.

 

선진리왜성은 정유재란 때인 1597년말에 왜장 모리가 퇴군의 거점으로 축성된 왜성이다. 일제강점기인 1912년부터 일본인들의 승전자리하여 공원을 조성하여 벚나무를 1,000여 그루심었다, 2006년 왜성을 일부 복원하였으며 선진리성 벚꽃은 사천팔경 중의 하나이다. 1592년 5월 29일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최초로 출전시켜 왜군을 패퇴시킨 역사적인 현장이며 고려시대 토성을 이용하여 왜성을 만든 곳으로 고려시대 토성과 왜성 일부를 복원하여 놓았다. 

 

조명군총은 정유재란 중인 1598년에 사천 선진리왜성에 주둔한 왜장 시마즈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의 집단무덤이다. 왜군과의 강화협상이 결렬되자 조선과 명나라는 사로병진 작전으로 왜군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기룡장군과 동일원 장군은 진주 망진채와 공양성, 서천읍성 등을 차례로 함락하고 1598년 10월 1일 선진리왜성에 주둔하고 있던 시마즈 요시히로오ㅘ 결전을 벌이다가 대패하게 되면서 8천여 명의 전사자가 발생하였다. 이들의 무덤이다.

 

이총은 임진왜란 때 왜군은 전리품으로 베어간 조선인들의 귀와 코를 교토 토요쿠니신사 앞에 묻고 이총이라 하였다. 1992년 이총의 흙 일부를 가져와 조명군총 옆에 안치하다가 2007년 현재의 자리로 이전 안치하였다. 

 

마도갈방아소리 전수교육관은 사천시 마도에서 전어잡이를 위해 불려지던 어로노동요인 마도갈방아소리를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되어 현재까지 보존 전숭되고 있다. 이를 전수하기 위한 교육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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