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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암태도는 소작농의 애환이 서린 들녘이다.



 

암태도 소작농의 애환이 서린 들녘으로 목포에서 서쪽으로 28.5km, 서남단 해상에 위치한 암태도는 섬 한복판에 355m의 승봉산이 늠름한 기백을 자랑한다. 암태도는 돌이 많고 바위가 병풍처럼 섬을 둘러싸고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변변한 모래사장 하나 없어 내세울 것이 마땅치 않은 암태도는 본래 쌀 한톨 구경하기 힘든 척박한 땅이었다. 그러다가 마명 방조제를 쌓아 드넓은 갯벌이 옥토로 바뀌게 되었다. 은암대교(675m)는 자은도와 암태도를 잇는다.

 

암태도에는 불교보다 기독교가 매우 강하다. 암태도 출신인 문준경 전도사가 6 · 25 전에 매우 활발하게 활동하여 목포 앞바다의 수많은 섬들을 다니며 전도한 결과, 성결교회들이 많이 생겼다. 암태도를 비롯하여 자은도, 팔금도, 임자도 등은 대부분 성결교회이다. 면소재지 앞 소작인항쟁기념탑 삼거리에서 북쪽으로 계속 가면 오도선착장이 나온다. 오도 역시 원래는 별개의 섬이었다. 암태도는 본래 3개의 섬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토사의 퇴적으로 하나의 섬이 된 것이다.

 

오도에는 1913년에 세워진 오도 등대가 있다. 등대로 가는 오솔길에는 다양한 기암괴석이 널려 있다. 이 기암을 감상하면서 등대까지 가는 오솔길이 몇 년 전에 조성되었다. 등대를 찾아가는 오솔길을 테마로 오도 뒷산 오솔길 3.5km를 복원한 것이다. 맷돌바위 가는 길을 시작으로 둠벙 가는 길 등 모두 16개 길로 조성됐다. 특히, 이 오솔길은 거북바위 가는 오솔길, 희망의 정상 가는 오솔길, 지혜의 오솔길, 해돋이 오솔길, 행복한 추억의 오솔길 등으로 명명되었다.

 

암태도 농민소작쟁 : 오도선착장 가는 길에 「암태도농민항쟁사적비」가 세워져 있었다. 사적비에는 항쟁에 대한 내용이 적시되어 있었고 그 옆에 서태석 선생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삼거리 가운데에 큰 탑이 하나 눈에 들어온다. 국내 첫 소작쟁의였던 암태도 소작인 항쟁을 기리는 기념탑인데 주변에 암태도 농민소작쟁의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다.암태도 민속

익금에서 나와 송곡리로 가면 매향비가 하나 있다. 길 옆 논 가운데에 위치한 보호각 속의 비석이다.

 

익금우실 : 1830년경 우씨가 배를 타고 와서 지금의 익금, 신석 일대를 돌아보고 방풍 및 방파제로서 사대문을 건립하기 위해 농치를 동문, 생김을 서문, 오루골을 남문, 익금을 북문이라 하였다. 현재는 북문인 익금우실만이 남아 있다.송곡우실 : 송곡마을 어귀에 길다란 담장이 있는데, 이 담장은 1905년 지나가던 스님이 마을 번창과 우환을 막으려면 이곳에 담을 쌓아야 한다고 하여 돌을 이용해 우실을 만들었다.

 

매향비의 매향은 향을 묻는 신앙의례이다. 말단 향촌사회를 단위로 해서 구현되며 특히 발원자들이 공동적으로 느끼고 있는 현실적 위기감에서 시작된 순수한 민간신앙이다. 1405년 건립된 매향비는 암태면 장고리에서 동쪽으로 2km 정도 떨어진 비석거리에 위치한다. 추포노도비, 추포해수욕장, 남강수사휼은선정비, 노만사 등이 있다. 신안군에서는 가장 오래된 사찰로 1873년에 창건되었으며, 해남 대흥사의 말사로 규모가 작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