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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화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길

 

 

강화나들길은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왕릉과 건축물, 조선시대에는 외세 침략을 막아 나라를 살린 진보와 돈대 등 역사와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생활 문화 그리고 세계적 갯벌과 저어새, 두루미 등 철새가 서식하는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다. 도보여권은 도보여행의 편으를 위한 안내 및 방문기념 도장 날인을 위한 여행수첩이다. 출발지점과 완주지점에 각 코스별로 특생이 담긴 스탬프가 마련되어 있다.

 

 

강화나들길 8코스 철새보러 가는길은 초지진을 출발하여 분오리돈대까지 코스로 17.2 ㎞ 에 5시간 40분이 소요된다. 초지진에서 황산어시장을 지나 황산도를 도는 산책길과 상쾌한 바람을 맞는 제방길, 그리고 들고 나는 물길로 형성된 갯벌계곡과 넓은 갯벌, 선과 산의 어울림이 최고인 도보여행코스이다. 초지진, 황산도선착장, 소황산주차장, 섬암교, 동검도 입구, 선두 5리 어판장, 후애돈대, 분오리돈대를 찾아본다.

 

 

초지진은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해안동로 58에 자리하고 있는 강화의 해안 경계 부대인 12진보 가운데 하나이다. 병자호란 이후 서해안 수비체제가 강화도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경기 서남부 해안의 진들이 강화도와 강화도 근처로 옮겨오게 된다. 효종 4년인 1653년에 남양의 영종진이 인천부 자연도로 옮겨왔다. 영종진이 자연도에 자리하면서 섬의 이름도 영종도로 바뀐다. 영종진을 남양에서 자연도로 옮긴 것은 자연도가 해상에서 강화도 진입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초지진은 효종 7년인 1656년에 안산에서 옮겨왔다. 초지진에서 초지돈대, 장자평돈대, 섬암돈대를 맡아 지휘했다. 고종 8년인 1871년 신미양요 때 미군과 충돌했던 격전지이다. 고종 12년인 1875년 일본 윤요호 사건 때 상륙을 시도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인 곳이기도 하다. 당시 초지진을 지키던 조선군은 일본군을 격퇴했다. 패퇴한 일본군은 철수하면서 영종도를 해코지했다. 이후 초지진은 허물어졌고 초지진이 관할했던 초지돈대만 남았다.

 

 

황산도는 강화군 길상면 초지리에 딸린 섬으로 초지리 간척지와 김포시 대곶면 약암리 사이의 수로상에 있으며 황산도 둑에서 약 500m 떨어진 곳에 있다. 원래 대황산도와 소황산도로 이루어졌으나 소황산도가 1962년 간척지 매립공사로 육지화되어 60ha의 농경지가 형성되었다.

 

 

동검도는 동쪽에 있는 검문소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염하의 남쪽 입구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을 마주보고 있다. 옛날 삼남지방에서 한양을 향하는 선박들이 한강으로 진입하기 위해 거쳐야 하는 염하 입구에 위치해 있다. 이곳을 지나가는 모든 선박을 검문하는 역할을 하던 섬이었다고 전해져 내려온다. 강화도 삼산면에 위치한 서검도와 대비를 이루는 지명이다.

 

 

선두 5리 어시장은 강화군 길상면 해안남로 619번길 24에 자리하고 있으며, 잔잔하고 조용한 해안가 분위기와 뉘엿뉘엿 해가져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곳이다. 후애돈대는 강화군 길상면 선두리 954에 위치하고 있다. 후애돈대는 양암돈대, 송곶돈대, 동검북돈대, 미곶돈대, 장곶돈재, 북일곶돈대, 정암돈대 등과 함께 길상면에 위치하고 있는 돈대이다. 돈대는 외침의 방비를 위하여 강화도 섬 전체에 마치 톱니바퀴처럼 둘러 쌓은 진지이다.

 

 

분오리돈대는 강화군 화도면 사기리 산 185-1번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 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처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숙종 5년인 1679년 5월에 완성된 48돈대에 이후 5개 돈대가 추가로 지어졌다. 분오리돈대는 1679년에 쌓은 48돈대 가운데 하나로 동막해수욕장 옆에 자리하고 있다.

 

 

분오리돈대는 원래 계획은 방형 구조였는데 자연 지형을 이용해 쌓다 보니 초승달 모양이 되었다. 돈대가 대부분 방형이거나 원형이라서 초승달 닮은 분오리 돈대의 개성이 도드라지게 보인다. 둘레가 113m이고 석벽의 높이는 160~440㎝이다. 1994년에 복원되었다. 다른 돈대들이 진이나 보에 속했던 것과 달리 분오리돈대는 진무영에서 직접 관리하는 영문 소속 돈대였다. 조방 범위가 매우 넓은 것이 특징이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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