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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강화나들길 1코스 강화버스터미널에서 성공회강화성당, 그리고 갑곶돈대까지

 

 

강화나들길은 선사시대의 고인돌, 고려시대의 왕릉과 건축물, 조선시대에는 외세 침략을 막아 나라를 살린 진보와 돈대 등 역사와 선조의 지혜가 스며 있는 생활 문화 그리고 세계적 갯벌과 저어새, 두루미 등 철새가 서식하는 자연생태 환경을 보고 느낄 수 있는 도보여행길이다. 도보여권은 도보여행의 편의를 위한 안내 및 방문기념 도장 날인을 위한 여행수첩이다. 출발지점과 완주지점에 각 코스별로 특생이 담긴 스탬프가 마련되어 있다.

 


강화나들길 1코스는 심도역사 문화길로 강화버스터미널에서 갑곶돈대까지로 18㎞로 6시간이 소요된다.. 고려시대의 임시수도로서 도서지역의 특성을 잘 간직하고 있는 강화산성, 고려궁지, 용흥궁, 강화성공회한옥성당과 아늑한 대산마을 벌판을 보며 연미정으로 가는 길은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고향같은 길이다. 버스터미널을 출발하여 동문, 성공회강화성당, 용흥궁, 고려궁지, 북관제묘, 강화향교, 은수물, 북문, 북장대, 오읍약수, 연미정, 옥계방죽, 월곶돈대, 강화전쟁사박물관, 갑곶돈대를 찾아간다.

 

 

 

성공회강화성당은 1900년에 안옥으로 지어진 건물로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고요한에 의하여 건립되었다. 강화성당은 바실리카 양식과 불교사찰양식을 과감하게 조합시켜 건립하였다는 것이 특징이다. 교회 내부공간은 바실리카 양식을 따랐고, 외관 및 외부공간은 한식 목구조와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는 불교사찰의 형태를 따랐다. 전체적으로 배모양을 본 떠 뱃머리인 서쪽에는 외삼문 및 내삼문과 성당종을 배치하고 중앙에는 성당을 두었다. 성당 앞마당에는 큰 보리수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용흥궁은 조선 제25대 왕인 철종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살던 집으로 철종이 왕위에 오르자 강화유수 정기세가 건물을 새로 짓고 용흥궁이라 하였다. 철종은 어렸을 때 이름이 원범이고 정조의 아우인 은언군의 손자이며 전계대원군의 셋째 아들로 어머니는 용성부대부인 염씨이다. 영조의 혈손으로는 헌종과 원범 두 사람뿐이었다. 헌종이 후사가 없이 죽자 대왕대비 순원왕후의 명으로 19세 나이로 왕위를 계승하였다. 경내에 철종의 옛 집임을 표시하는 비석과 비각이 있다.

 

 

고려궁지는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하여 도읍을 개경에서 강화로 옮겨와 1232년부터 다시 환도한 1270년까지 38년간 사용되던 고려궁궐터이다. 강화의 고려 궁궐은 1270년 송도로 환도할 때에 몽골의 압력으로 모두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고려 궁권터에는 강화의 지방 행정관서와 궁궐 건물이 자리를 잡았다. 강화의 궁궐은 행궁과 장녕전, 만녕전, 외규장각 등이 있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불타 없어졌다.

 

 

 

강화향교는 고려 인종 5년 1127년에 내가면 고천리에서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고종 19년 1232년 강화읍 갑곶리로 옮겼다가 고종 46년 1259년에 서도면 볼음도로 옮겼고 조선 인조 2년 1642년에 유수 심열이 송악산 기슭으로 옮겼다고 한다. 인조 7년 1627년에 유수 이안눌이 대성저에 위패를 모시고 명륜당을 중건하였으며, 숙종 14년 1688년에 유수 민시중이 남문 근처로 이건하였다.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외삼문 등이 들어서 있다.

 

 

연미정은 제비꼬리 같다고 해서 지어진 이름이다. 한강과 임진강의 합해진 물줄기가 강화도 동북단에 이르러 서쪽과 남쪽으로 나뉘어 흐르는데 이 모양이 마치 제비꼬리 같다고 한자로 연미이다.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정자이며 정묘호란 때에는 강화조약을 체결했던 곳이다. 이 곳은 강화십경의 하나로 손꼽히는 자리로서 절경을 이루고 있으며, 이 정자에 오르면 북으로 개풍군과 파주시, 동으로 김포시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자 양쪽에 수백년 수령의 느티나무 두 그루가 있다.

 

 

 

갑곶돈대는 강화읍 갑룡길 26의 갑곶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돈대는 해안가나 접경 지역에 돌이나 흙으로 쌓은 소규모 관측 방어시설이다. 병사들이 돈대 안에서 경계근무를 서며 외적의 척후활동을 비롯한 각종 수상한 정황을 살피고 대쳐한다. 적이 침략할 때는 돈대 안에 비치된 무기로 방어전을 펼친다. 조선시대 강화도 해안에 돌로 쌓은 돈대 53개가 설치됐다. 갑곶돈대는 숙종 5년인 1679년 5월에 완성된 48돈대 가운데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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