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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서울 근교 나들이 추천 양평의 미술관을 만나다

 

 

서울 근교 나들이로 봄이 오는 길목에 남한강변에 있는 갤러리에서 따뜻한 감성을 느껴보자. 친근한 작품들이 자리한 야외 갤러리와 양평 예술가들의 작품들로 꾸며지는 전시실에선 한 걸음 쉬어가기가 좋은 곳들이 많이 있다. 음악과 뮤지컬이 흐르는 미술관은 예술의 향기가 가득 흐르고 있다.

 

 

다산유적지는 남양주시 조안면 다산로 747번길 11의 양수리에서 팔당댐 방향으로 약 3㎞ 거리에 위치한 마현부락인 마재에 경기도 기념물 제7호인 다산 정약용 선생의 산소가 위치해 있다. 다산 정약용을 비롯한 4형제의 생가터가 있는 곳이다. 마재에서 200m 거리에 있는 다산유적지에는 사당과 기념관, 생가터 등이 보존되어 있고 언덕 위에는 다산의 묘소가 있다. 이 묘소에서 내려다보면 마을과 한강을 넘어 천진암이 있는 앵자봉 계곡이 펼쳐져 있다. 마재에서는 천진암 앵자봉 능선을 멀리 바라다 볼 수 있다. 천주교회의 큰 초석이 된 권철신 5형제의 집터인 양근 대감 마을도 있다.

 

 

다산 정약용은 조선 후기 실학을 집대성한 학자로, 약현의 사위가 황사영, 이들 형제의 누이가 최초의 세례자 이승훈의 부인이라는 것 등을 보면 정씨 형제가 천주교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산은 목민심서, 경세유표, 흠흠신서 등 수많은 저서를 남겼다. 그는 본래 요한이라는 세례명을 받고 10여 년간 열심히 신앙 생활을 했고 1801년 신유박해때 배교함으로써 죽음을 면하고 전남 강진으로 유배를 갔다. 18년 동안 5백여 권의 저서가 쓰여졌으며, 유배생활을 끝내고 마재로 돌아온 그는 기도와 고행의 삶을 살다가 중죽인 유방제 신부에게 병자 성사를 받고 75세로 세상을 떠났다.

 

 

양평군립미술관은 양평군 양평읍 문화복지길 2에 자리하고 있으며, 양평은 인구비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예술인들이 모여 사는 고장이다. 양평군은 2011년 12월 16일 양평군립미술관이 정식으로 개관하여 양평군민의 문화향유와 양평을 찾는 일반대중이 쉬어갈 수 있는 국내의 대표적인 군립미술관으로 개관하였다. 양평군립미술관은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로 세워진 미술관으로 전시관 뿐만아니라 교육시설, 컨퍼런스룸, 라이브러지, 키즈품, 세미나실, 카페 등을 갖추고 있다. 현장체험 위주의 공가 확보 및 테마형 전시기획은 양평을 문화관광 브랜드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양평시장은 양평군 양평읍 양평장터길 15의 읍내 상설종합상가 골목과 그 뒤쪽 철둑길 밑에 천여평되는 터에 3일과 8일에 선다. 장터에는 나물류와 산채가 많이 나오는데 특산물은 머루, 다래, 으름, 더덕 등이다. 용문산 입구에서 파는 더덕은 용문산 약더덕이라 하여 향기가 뛰어나고 약용가치도 높다고 한다. 장터에는 직접 수확해서 가지고 나온 곡물과 고추, 산에서 조금씩 태 온 나물들을 파는 아낙네 들이 조그만 광주리를 앞에 놓고 곳곳에 늘어앉아 있다. 양평군의 용문산 산나물은 예로부터 유명해 삶은 후 찬물에 우려 먹지 않아도 그 맛이 쓰지 않다고 한다.

 

 

 

용문산 용문사는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 782, 중앙선 용문역에서 동북쪽으로 약 9㎞ 정도 떨어진 용문산 중턱에 자리하고 잇는 신라 신덕왕 2년 913년에 대경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세종대왕 때 다시 지어 두 개의 불상과 여덟 개의 보살상을 모셨다. 6.25사변으로 많이 파괴되었으나 보수가 많이 되었다. 용문사에서 계곡을 따라 2㎞올라가면 산중턱에 용의 뿔을 닮은 용각바위를 만나게 되고 여기서 1㎞ 더 올라가면 100명이 앉아 쉴 수 있는 대형바위, 마당바위가 있다. 오촌교에서 중원계곡까지는 6.5㎞로 계곡을 따라 산 위로 올라가면 절경을 만날 수 있다. 3m높이의 중원폭포가 있다.

 

 

용문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약 1,1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42m, 뿌리부분 둘레 15.2m인 동양에서 가장 큰 은행나무로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통일신라 경순왕의 아들인 마의태자가 나라를 잃은 설움을 안고 금강산으로 가다가 심었다는 전설과 의상대사가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 놓은 것이 자라서 나무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1907년 정미의병 항쟁 때 일본군이 용문사에 불을 질렀느데 이 나무만 타지 않았다는 이야기들이 전해지고 나라레 큰 일이 일어날 때마다 소리를 내어 알렸다고도 한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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