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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하멜표류기의 흔적을 만나보는 강진 여행코스

 

 

하멜표류기의 흔적을 만나볼 수 있는 강진 여행코스로 일정을 계획해보자. 먼저 살펴볼 강진 여행코스인 강진 전라병영성은 조선시대의 병마절도사의 영이 있던 곳으로 병영성 곳곳에는 강진 병영마을 옛 담장,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성동리 은행나무, 삼인리비자나무, 병영성 홍교 등 볼거리가 제법 많이 남아있다. 특히 이곳은 하멜표류기를 쓴 하벨이 머물던 곳으로 병영성의 옛 담장은 하멜식 담쌓기라 부르는 방식으로 쌓은 담장으로 잘 알려져 있다. 병영성과 병영마을, 하멜의 흔적까지 남아 있어 천천히 걸으며 둘러보기에 제격이다. 코스의 총거리는 19km이다.

 

 

강진 병영마을 옛담장은 강진군 병영면 박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병영마을은 옛 병마절도사의 영이란 명칭에서 유래된 마을로 오랜 역사속에서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수인산, 선자산, 옥녀봉, 별락산, 화방산 등 산으로 둘러싸여 분지형태의 천연요새로 일찍이 전라도의 군수권을 통괄했던 병영성이 이곳에 들어서 있었으며 사적 제397호로 지정된 병영성지가 남아 있다. 병영마을의 담장은 전체적으로 돌과 흙을 번갈아 쌓은 토석담으로 하부는 비교적 큰 화강석을, 중단 이후로는 어른 주먹 크기 정도의 작은 돌을 사용하여 쌓아 올렸으며 담 위로 기와로 지붕처리를 하였다.

 

 

하멜 일행이 1656년부터 1663년까지 7년간 이 곳에 머무는 동안 그들로 부터 습득한 것으로 전해오는 담 쌓기 방식인, 중단 위쪽으로 얇은 돌을 약 15도 정도 눕혀서 촘촘하게 쌓고 다음층에서는 다시 엇갈려 쌓은 일종의 빗살무늬 형식으로 이 곳에서는 이 형식을 하멜식 담쌓기라고 부르며 타 지방과의 다른 독특한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담장 역할을 하는 부속채도 담장과 같은 높이와 방식으로 축조되어 서로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담장의 높이는 2m정도로 높은 편이며 마을 안길이 직선형으로 되어 있어 담장이 질서 정연하게 보인다. 토담길이가 약 10,000m의 돌담과 토석담이다.

 

 

강진전라병영성은 강진군 병영면 병영성로 175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조 600년 간 호남과 제주도 53주 6진을 통할한 육군의 총 지휘부로 태종 17년인 1417년에 광산현에 설치되어 있던 병마절도사영을 이설한 성이다. 제주도에 표착했던 네델란드인 하멜이 8년여 동안을 억류생활을 했던 곳이다. 전라병영성지는 1992년 3월 9일 전라남도 기념물 제140호로 지정되었으며, 1997년 국가사적 제397호로 지정되었다. 성곽흔적이 뚜렷이 남아 있어 그 역사적 중요성과 의의를 한차원 높이기 위해 성곽 등을 복원하였으며 하멜체류지, 한골목, 병영홍교, 비자나무, 은행나무 등의 관련 유적이 남아있다.

 

 

 

하멜체류지와 강진 성동리 은행나무는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마을 중앙에 우뚝 솟아 마을의 상징목으로 되어있으며 수령이 500년 전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수고 30m, 흉고둘레 6.75m, 수관폭은 중심에서 동쪽으로 16.5m, 서쪽으로 13m, 남쪽으로 10.9m, 북쪽으로 3.5m나 뻗어 있다. 하멜체류지는 네델란드인 하멜일행 33명이 이곳에서 생활하면서 몇몇은 결혼해 살기도 했으며 생계를 위해 잡역을 하거나 나막신을 만들어 팔았고 춤판을 별여 삯을 받기도 했다고 한다. 하멜 등은 1666년 9월 여수에서 7명이 탈출하여 하멜표류기를 저술하여 서양에 알리게 되었다.

 

 

병영성 홍교는 강진군 병영면 성동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병영의 관문이었다. 이 홍교는 일명 배진강 다리 라고도 하는데 장방형 화강석재 74개를 26열로 정교하게 무지개처럼 쌓고 잡석을 채워 보강한 다음 점토로 다리 위를 다졌다. 홍예의 상단 중앙에 돌출시킨 용두는 여의주를 입에 물고 머리를 치켜들고 있다. 조선 숙종때인 1698년에 양한조가 감독, 준공하였다는 내용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추정으로 18세기에 건축된 것으로 보고 있다.

 

 

월남사지는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에 자리하고 있으며 월남사터에 남아 있는 삼층석탑이 백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 탑은 백제의 옛 땅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상 백제 양식을 많이 따르고 있으며 기단 및 탑신의 각 층을 별도의 도로 조성한 것이나 1층의 지붕돌이 목탑에서처럼 기단보다 넓게 시작하는 양식 등이 그러한 특징이 된다. 대표적인 백제탑이라 할 수 있는 부여 정림사지오층석탑과 비교해볼 수 있으며 전라도 지역에서는 규모나 양식으로 매우 중요한 석탑이라 할 수 있다.

 

 

 

전남 강진다원은 강진군 성전면 백운로 93-25에 자리하고 있으며,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리우는 월출산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월출산은 큰 바위가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으로 그 경치가 마치 한폭의 산수화를 그려 놓은 것과 같이 산세가 뛰어나며 예로부터 산 주변의 여러 사찰을 중심으로 차나무가 재배 되었던 곳이다. 강진 월출산 아래의 볼모 야산도 1981년 5월에 개간되기 시작하였으며, 이곳은 옛부터 녹차를 애호하는 문인 선비들의 전통사상이 면면이 이어져 온 곳으로 특히 강진 해남지역의 녹차 사랑은 초의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영향으로 그 뿌리가 더욱 굳건했다.

 

 

월출산 남쪽기슭을 개간하여 해방 직전까지 국내 최초의 녹차제품인 백운옥판차라는 전차를 생산하던 차산지이기도 하며 월출산의 적당한 습도와 주야간 온도차가 크고 안개가 많아 차의 떫은 맛이 적고 향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이 곳 다원은 이른 봄부터 어린싹을 채엽하기 시작하여 1년에 3~4회 채엽을 한다. 넓은 차밭과 서리방지용 휀이 설치되어 있어서 이국적인 면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강진 월출산 아원 인근 관광지로 다산정약용 선생의 유배지인 다산초당, 백련사, 영랑생가, 강진고려청자도요지 등이 있다.

 

 

무위사는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에 자리하고 있으며 원효가 창건하여 관음사라 하였는데 헌강왕1년인 875년에 도선 국사가 갈옥사로 창건하였다. 선각국사 형미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으로 무위갑사에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하고 널리 교화를 펴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무위사는 형미 스님이 주것했던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1974년 벽화보존각, 해탈문, 분향각, 천불전, 미륵전 등을 중건하면서 극락전의 벽화는 보존각에 소장되어 있다.

 

헨드릭 하멜은 네덜란드 동인도회사 소속 선박 선원으로 1653년 일본 나가사키로 가던 도중 일행 36명과 함께 제주도에 표착했다. 1666년 억류생활 끝에 탈출하여 1668년 귀국했다. 그 해에 하맬표류기로 알려진 기행문을 발표하여 한국의 지리, 풍속, 정치, 군사, 교육, 교역 등을 유럽에 소개한 최초의 문헌이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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