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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대구 근대골목에서 계산성당과 대구약령시 한의약박물관 탐방

 

대구의 근대골목에는 100년 전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100년 전 선교사들의 주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청라언덕 아래로 계산성당과 이상화고택 그리고 진골목이 아스라이 이어진다. 삶의 에너지가 넘실대는 시장과 도심 끝에 만난 김광석 거리에는 옛 가수의 애잔한 노래가 나그네의 고달픈 마음을 어루만진다.

 

계산성당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에 자리하고 있으며 로마네스크 양식의 아름다운 성당으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 1886년 대구 지역 선교 활동을 책임 맡고 부임한 로베르 신부가 지금의 계산동 성당 부지를 매입하면서 건립되기 시작하였다. 1899년 한국식의 목조 십자형 건물로 지어졌으나 1년 만에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다. 그 후 재건축에 착수하여 로베르 신부가 설계하고 국내에서 찾아보기 힘든 함석이나 스테인드 글라스 등의 재료들은 프랑스 및 홍콩에서 들여와 사용하였다.

 

계산성당은 공사가 시작되고 3년이 지난 1902년에 완성되었다. 이 건물은 대구 지역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1900년대 초기의 건축물이다. 성당의 평면은 라틴 십자형으로 중심의 본량과 양쪽의 측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런 평면 구조는 성당의 평면, 건물의 외부와 내부 공간에서 뚜렷하게 볼 수 있다. 또한 건물 전테적으로는 둔중한 로마네스크 양식을 띠고 있지만 첨탑과 스테인드글라스 등의 고딕적 요소들이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대구계산동성당은 영남지방에 천주교를 토착화하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하였으며, 1011년 조선교구로부터 분리, 대구대교구 주교좌 본당이 되었는데 초대 주임신부에는 로베르를 임명하였다. 성당 부지에는 설계자를 기념하는 동상과 주교관이 있다. 이 성당 건물에서 동남쪽 600여m 지점에 있는 관덕정 수ㅠㄴ교 기념관에는 을해, 정해, 병인박해 때 교우들의 은신처였던 한티고개, 신나무골 등 교우촌에서 붙잡혀 처형된 순교자들의 유물 30여 점 등 65점의 유물이 전시되어 있다.

 

 

이상화고택은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6-1, 계산동 2가 84번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상화는 항일문학가로 잘 알려져 있으며 1939년부터 작고하던 1943년까지 거하던 곳이다. 암울했던 일제 강점기에 민족의 광복을 위해 저항정신의 횟불을 밝힌 시인 시상화 선생의 시향이 남아있는 곳이다. 이상화고택은 1999년부터 고택을보존하자는 시민운동으로 시작되었다. 이상화 고택은 암울한 시대를 살면서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이상화의 정신을 기리고 후손에게 선생의 드높은 우국정신과 문학적 업적을 계승하는 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대구약령시 한의약박물관은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415길 49에 자리하고 있으며 약령시의 역사를 한눈에, 350여 년의 전통인 약령시의 역사와 약전골목의 유래를 한눈에 볼 수 있고 체험할 수 있는 전시문화 공간이다. 박물관은 약령시의 유래와 발전과정 등을 그래픽과 애니메이션으로 4개 국어로 소개하고 있으며 각종 희귀 한약재를 비롯해 동의보감 등 한의서, 약작두 등의 한방관련용품 300여 점을 전시하고 있다. 문화관 입구에 대형약탕기가 눈길을 '끌고 1층에는 전국유일의 한약재 도매시장이 있으며 다양한 체험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진골목은 대구광역시 중구 진골목길 26에 자리하고 있으며 긴골목이라는 경상도 말이다. 대구 읍성의 남문이 있었던 구 대남 한의원 사거리를 통과해 종로로 50m 정도 들어서면 우측편으로 길게 뻗어 들어가는 골목이다. 해방전까지 이 골목은 대구토착세력이었던 달성서씨들의 집성촌이 있던 곳이다. 이 골목을 통하면 종로를 통하지 않고도 감영, 중영까지 갈 수 있었다. 해방 이후에도 재력가들과 기업인들의 거주지로 각광을 받았던 곳이다.

 

 

대구 달성공원은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에 자리하고 있으며 대구의 공원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친근한 공원이다. 달성공원 안에는 지방문화재 자료 제3호인 경상감영의 정문이 었던 관풍루가 있다. 관풍루는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의 남쪽에 포정문을 세우고 그 위에 문루를 만들었는데 이 것이 관풍루이다. 달성공원은 삼한시대 부족국가였던 달구벌의 성지 토성이었다. 고종 광무 9년인 1905년에 공원으로 만들어졌으며 1965년 2월 대구시에서 새로운 종합 공원 조성계획을 세워 대공원을 만든 것이다. 잔디광장, 종합문화관, 동물원 외에 이상화 시비 등이 있다.

 

대구 서문시장은 대구광역시 중구 큰장로 26길 45에 자리하고 있으며 1920년대에 천황단지를 매립하여 지금의 장소로 이전한 대구 큰 장이라고 했던 시장이다. 서문시장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조선시대 3대 시장이라면 대구, 평양, 강경 등 세 군데 시장을 말하는데 이 중 하나이다. 대구 성곽의 서쪽에 있었기 때문에 서문시장이라 이름하였고 처음에는 성곽에서 300m 정도의 거리인 지금의 시장불로 본전 다방 주위 오토바이 골목일대가 시장이었으며, 매월 2일과 7일에 개장하였다고 한다. 홍두깨전, 닭전 골목이름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서문시장은 섬유관련 품목이 주종을 이루며 주단, 포목, 메리야스, 공예품, 남녀의류, 그릇, 건해산물등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규모가 크며 푸근한 인심이 살아 있는 시장으로 냉난방시설, 대형 주차장 등의 편의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다. 서문야시장의 시그니처 메뉴는 대구의 소울푸드 막창을 컵에 담아 소량 판매하는 컵 막창이다. 무를 얇게 썰어 떡볶이국물을 우려낸 무덕볶이와 영국 전통음식에서 착안한 쉬림프 앤칩스는 줄을 서서 먹어야 할 정도로 인기가 좋은 품목이다.

 

김광석거리는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232에 자리하고 있으며 고 김광석이 살았던 대봉동 방천시장 인근 골목에 김광석의 삶과 음악을 테마로 저성한 벽화거리이다. 2010년 방천시장 문정성시 사업의 하나로 방천시장 골목길에 조성하기 시작한 김광석 길은 350m의 길이의 벽면을 따라 김광석 조형물과 포장마차에서 국수 말아주는 김광석,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김광석 등 골목의 벽마다 김광석의 모습과 그의 오래 가사들이 다양한 모습의 벽화로 그려졌다. 매년 가을에는 방천시장과 동성로 일대에서 김광석 노래부르기 경연대회를 개최하여 고 김광석을 추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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