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내여행

겨울에 아이와 가볼만한곳으로 동대문 주변 역사의 현장

 

 

겨울에 아이와 가볼만한곳으로 서울 동대문 일대를 둘러보는것은 어떨까? 이번에 살펴볼 겨울에 아이와 가볼만한곳으로 동대문과 함께 동대문시장과 운현궁과 종묘 일대를 둘러보고 동대문 닭한미라 골목에서 맛집까지 찾아가보자. 이번 겨울에 아이와 가볼만한곳으로 만나볼 보물 1호 동대문 주변에서 만나는 역사의 현장에는 우리나라 보물 제1호 동대문이 있다. 동대문을 중심으로 한양성곽길이 북쪽으로 이어져 있고, 동대문 운동장과 패션시장으로 우뚝 선 동대문 중심의 상권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동대문은 서울 도성에 딸린 8문 중의 하나로 서울 도성 정동쪽에 있으며 원래의 이름은 흥인지문이다. 일반적으로 동대문이라고 부른다.

 

 

쇼핑 명소로 유명한 동대문시장은 패션의 최첨단 기지로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를 방문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이 꼭 들르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광장시장을 시작으로 창신동 문구거리까지 약 1.3km에 걸쳐 청계천로 좌우로 형성된 시장 전체를 동대문시장이라 부르는데 건물 약 30여 동에 3만여 개의 점포가 있다. 평화시장, 동대문종합시장, 신평화시장 등이 전통적인 도매 상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식당들도 이곳 구석 구석에 숨어 있다.

 

 

옛 동대문운동장 쪽의 아트플라자, 디자이너클럽, 우누꼬레 등은 현대적인 상권을 형성한 곳으로 이른 저녁부터 새벽까지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도소매 의류 상인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밀리오레, 두타 등의 대형 쇼핑몰은 10대와 20대 등 젊은층에게 사랑받는 쇼핑 공간으로 쇼핑몰마다 ㅇ야외공연장을 마련하여 가수초청공연, 비보이쇼, 댄스경연 등 다양한 이벤트를 열고 있으며 외국인들의 야간 투어 코스로도 이름난 곳이다.

 

 

운현궁은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일대로 464의 운니동에 위치한 사적 제257호의 문화유산이다. 운현궁은 경복궁과 같은 궁궐이 아니라 왕족의 친족들이 거주하던 곳을 궁으로 부른 것 중의 하나이다. 궁은 생활의 공간이며 궐은 정치의 공간으로서 경복궁이 정치와 궁중생활이 함께 이루어진 곳이었다면, 운현궁은 왕족의 친족인 흥성대원군의 일가가 거주하고 생활하던 공간이었다. 운현궁은 조선조 말기의 역사적 사건들 대부분이 시작된 곳이며 수많은 개혁정책과 쇄국정책이 시행된 곳이기에 역사적 상징성이 남다른 곳이다.

 

 

 

운현궁은 흥선대원군의 사저였으며, 조선 26대 임금인 고종의 잠저, 즉 임금이 되기 전까지 출생, 성장한 곳이었다. 철종이 후사가 없이 사망하자 당시 왕실의 최고 어른인 대왕대비 조씨는 흥선군 이하응의 둘째 아들 명복으로 하여금 대통을 계승하게 하였다. 이 때 흥선군은 흥선대원군으로, 부인 민씨는 부대부인으로 작호를 주는 교지가 내려지고 흥선군의 사저는 운현궁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운현궁의 대표적인 건물은 고종 원년인 1864년 9월에 준공한 노안당과 노락당, 그리고 6년 후에 증축한 이로당이 있고, 지금은 한 개뿐이지만 그 당시 4개였던 대문이 있다. 노락당은 운현궁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건물로서 가족들의 회갑이나 잔치 등 튼 행사때 주로 이용되었다. 노안당은 대원군이 사랑채로 사용하던 건물이다. 말년에 임종한 곳도 노안당의 큰 방 뒤쪽에 있던 속방이었다. 노안당은 전형적인 한식 기와집으로 추녀 끝이 섬세하고 아름다운 것이 특징이다.

 

 

이로당은 노락당 옆에 있는 안채로서 구조가 "ㅁ"자형으로 되어 있고 그 내부 가운데에 정원이 있는 청저한 금남의 구역이었다. 노락당 못지 않게 운현궁의 절대권위를 상징하는 것이 4대문이었다. 한창 전성기였을 때는 정문, 후문, 경근문, 공근문 등이 있었으며, 경근문은 고종이 운현궁을 출입할 때 전용하던 문으로 창덕궁과 운현궁 사이에 있었다. 공근문은 대원군이 궁궐을 출입할 때 전용한 문인데 경근문과 함께 업어지고 지금은 일본문화원 옆터에 경근문의 기초만 남아있다.

 

 

종묘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57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왕조의 역대 왕과 왕비 그리고 사후에 추존된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신 사당이다. 경내에 종묘정전을 비롯, 별묘인 영녕전과 전사청, 어숙실, 향대청, 신당 등의 건물이 있다. 여기에 제사를 지내는 종묘대제는 삼국 시대부터 있었던 국가적인 행사였다. 역대 임금에게 제사를 지내는 의식은 왕조시대에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의 으뜸가는 행사이자 통치질서의 기본이었다.

 

 

 

종묘는 중국에서 비롯된 제도로 왕조시대의 정신세계를 지배한 예제의 핵심이었다. 종묘는 궁궐의 동쪽에 지어야 한다는 중국의 제도를 본따 경복궁의 동쪽에 세웠다. 그러나 종묘는 우리 현실에 맞게 수용되면서 한국 고유의 특성을 간직한 문화유산으로 자리잡았다. 단순한 구조의 재실을 길게 연결해 장엄한 엄숙미를 유감없이 발휘하였으며, 잡다한 장식을 일체 곁들이지 않은 최소한의 공간 구성으로 제사공간이 갖는 웅장하고 엄숙한 분위기가 되도록 만들었다.

 

 

종묘제례는 1975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제56호로 지정되었고, 유네스코는 1995년 12월 9일에 불국사, 석굴암, 해인사의 팔만대장경 판고와 함께 종묘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현재 종묘 정전에는 19실에 49위, 영녕전에는 16실에 34위, 정전묘정 공신당에 83위의 신위가 각각 봉안되어 있다. 종묘에서 베풀어지는 제사 의식을 종묘제례라 부르고, 각 제사 의례에 맞추어 음악과 무용이 곁들여져 경건한 분위기를 더욱 고양시키는데 이를 종묘제례악이라고 한다.

 

 

서울 동대문 닭한마리 골목의 진원조 보신닭한마리는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40가길 14에 자리하고 있다. 큰 양푼에 육수 가득 붓고 그 속에 닭한마리를 통째로 끓인다. 닭은 살짝 삶아서 나오지만 식탁 위 간이 가스렌지 위에서도 푹 끓이는 게 좋다. 감자, 떡, 인삼, 대추, 버섯 등 부재료들의 맛이 우러나 뒤엉켜 한 맛을 내야 하기 때문이다. 고기와 부재료를 건저 먹은 뒤 남은 육수에 칼국수 사리를 넣어 끓여 먹는 것으로 닭한마리를 맛본 것이 된다.

 

 

겨울에 아이와 가볼만한곳으로 마지막으로 둘러볼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은 서울특별시 중구 을지로 281에 자리하고 있는 과거 전통 건축물과 유적, 유물, 최첨단 현대 복합문화시설이 어우러진 곳이다. 공원 내에는 서울성곽과 이간수문 외에도 동대문역사관, 동대문유구전시장, 동대문 운동장기념관, 이벤트홀, 디자인갤러리 등이 들어섰다. 특히 동대문운동장을 기념하기위해 남긴 야간경기용 조명탑 2기와 성화대도 자리한다. 조선 건물지유구 44기와 조선백자와 분청사기 등 도자류 등 주요 유물 1,000여 점이 출토되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내용에 오류가 있을 수 있으니 더 자세한 내용은 주최측 및 언론기사 등을 확인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