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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여행

충주 라바랜드와 함께 수안보온천과 충주미륵대원지 탐방

 

 

충주 라바랜드를 비롯하여 수안보온천과 함께 충주미륵대원지까지 다양한 충주 여행지를 만나보자. 이번에 살펴볼 충주미륵대원지와 수안보온천과 함께 둘러볼 충주 라바랜드는 충주세계무술공원 내에 설치되어있는 키즈 문화 공간이다. 충주 라바랜드는 실내 키즈카페와 함께 야외 놀이동산을 동시에 즐길 수 있는 곳이며 악동 라바 친구들을 직접 만날 수 있어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곳이다. 충주에서 만날 수 있는 어린이 테마파크로써 다양한 교육 체험 프로그램와 공연, 복합 놀이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이용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이며 연중 무휴로 운영된다. 입장료는 어린이는 12,000원, 성인은 6,000원이며 24개월 미만의 어린이는 무료이다. 기본 입장료로 2시간까지 이용이 가능하며 2시간 이후부터는 30분에 1,000원의 요금이 추가로 발생한다.

 

 

수안보 온천은 충북의 알프스라고 불리는 조령 북서쪽 산록에 위치해있으며 전국 최초의 온천이라고 알려져있다. 약알칼리성 온천수로 수온은 53도이며 국내에서 유일하게 중앙집중 관리방식으로 충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 조성왕조실록에 따르면 피부염을 치료하기 위해 태조 이성계가 수안보 온천을 자주 찾았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수안보 온천수에 대한 다양한 긍정적 평가가 있는데 온천수로 목욕을 하면 세포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으며 온천수로 술이나 김치를 만들면 신선도가 오래 유지된다고 한다. 식수로 사용할 경우 산성 체질을 가졌을 경우 알카리성 체질로 바꾸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자료출처 : 수안보온천 홈페이지)

 

다음으로 살펴볼 충주미륵대원지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 58의 월악산 자락에 자리하고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미륵사지는 삼국시대부터 중요한 교통요지였던 하늘재에 아래에 고려시대 석굴사원이다. 미륵리 석불입상, 귀부 석등 등 우리나라 불교문화연구에 중요한 문화재가 있다. 미륵리 석불입상은 월악산을 바라보고 서 있는 모습으로 미소를 띄고 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였던 마의 태자가 금강산으로 향하면서 지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만 남아있는 석불과 석탑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사찰터로 보고 있다. 석굴암을 모방한듯 하나 규모가 웅장하며 우리나라 석굴사원의 발달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근처에  하늘재와 수안보온천지구가 있다. 발굴조사가 실시되어 미륵당초라 새겨진 기와, 연꽃무늬 막새기와 금동제 귀면 등이 출토되었다.

 

 

고려시대에 들어와 불교가 크게 성행하면서 전국을 중심으로 수많은 사찰이 창건 또는 중건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석탑과 석등이 사찰 가람의 중요 석조물로 건립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통일신라시대 석등 양식을 계승한 석등도 건립되지만 독특한 양식의 석등도 많이 건립되었다. 팔각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의 전형적인 석등 양식을 거의 그대로 계승하면서 부분적으로 장식이나 치석 수법이 고려화되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고 있다.

 

 

 

하늘재는 미륵대원지 원터가 끝나는 지점에 하늘재로 향하는 길임을 알리는 표석이 나타난다. 한반도 최초의 고갯길이 시작되는 지점이다. 하늘재는 한강과 낙동강 사이 백두대간을 넘는 길, 경북 문경의 관음리와 충북 충주의 미륵리를 잇는 고갯길이다. 156년 북진을 위해 신라 제8대 왕인 아달라왕이 길을 내었다고 한다. 이 길을 통해 한강유역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고 한다.

 

 

고구려 온달과 연개소문은 빼앗긴 하늘재를 다시 찾기 위해 끈질긴 전쟁을 벌렸으며, 고려 공민왕은 홍건적을 피해 몽진할 때 이 길을 이용했다고 한다. 이렇듯 교통의 요지이며 군사적으로도 중요한 거점이었으나 조선 태종 때 새재길이 열리면서 그 역할이 축소되었다. 이전에는 계립령, 대원령, 지릅재 등으로 불렀으나 지금은 거의 모든 지도에 하늘재라고 표기하고 있다.

 

 

미륵대원지에서 하늘재까지 이어지는 오솔길은 아름답고 아늑하다. 길 옆으로 펼쳐진 숲은 깊고 그윽하다. 좁고 완만한 2km의 오솔길을 따라 정상에 이르면 하늘 아래로 만수봉, 포암산, 탄항산, 부봉, 마패봉에 걸쳐진 배두대간의 등줄기가 펼쳐져 장쾌한 풍광을 드러낸다. 길은 평평하지만 골짜기가 깊어 야생동물들이 많이 살고 있다고 한다.

 

 

 

만수계곡은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와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의 경계에 있는 계곡으로 월악산을 형성하는 양대 축의 하나인 만수봉으로 올라가는 주요 하곡으로 수려하고 깨끗한 화강암 지대로 이루어져 있다. 게곡에는 판상절리가 쪼개져 나가면서 만들어진 너럭바위, 수직절리에 의해 형성된 절벽, 곳곳에 있는 화강암 너절들과 어우러져 맑은 물이 흐르고 있다.

 

 

신라가 멸망하고 마지막 임금이었던 경순왕의 아들 마의태자은 그의 누이 덕주공주와 함께 서라벌을 떠나 북쪽으로 향했다. 하늘재를 넘고 미륵리에 당도한 마의태자는 그곳에 미륵입상을 세우고 덕주공주는 월악산에 덕주사를 건립한 후 오랜 세월을 기도하며 신라의 부흥을 기다렸다. 그러나 끝내 그들의 내세는 오지 않았고 망국의 한을 품고 하늘재를 넘었던 마의태자는 결국 금강산을 향해 떠났다.

 

 

마의태자는 신라 56대 경순왕의 태자로 신라가 고려 태조 왕건의 신흥세력에 대항 할 길이 없어 항복을 논의하자 천년사직을 하루 아침에 버릴 수 없다고 반대하였으나 결국 고려에 귀부를 청하는 국서가 전달되자 마의태자는 통골하며 금강산인 개골산에 들어가 베옷인 마의를 입고 초근목피로 여생을 보냈다고 한다. 덕주공주와 덕주사의 전설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았으며 여행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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